회수와 징계로 끝나서는 안된다
회수와 징계로 끝나서는 안된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8.10.17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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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 혁 두 부국장 <영동>

지자체나 정부가 농촌에 지원하는 영농자금의 대부분이 담보가 없거나 부채가 많아 신용에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격을 갖춘 농민이 없어 예산이 남아돌거나, 담보능력을 갖춘 부농들의 독차지가 되는 것이 실상이다. 너나없이 빚더미에 올라앉아 대출자격이 열악한 농촌의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탁상시책들을 내놓고 농촌을 배려하고 있다고 큰소리치는 정부의 몰염치가 의아스러울 정도다.

쌀 소득보전 직불금은 그나마 신용에 관계없이 벼농사를 짓는 자경농 전체에 혜택이 돌아가는 지원시책이다. 정부가 지난 2005년 추곡수매제를 폐지하며 시장개방으로 타격을 입게될 벼재배 농민들의 소득 보전을 위해 마련한 정책이다. 목표 가격과 산지 쌀값 차이의 85%를 정부가 직접 현금으로 보상해주고 있다.

농경지 규모가 커 지난 3년간 121억원을 쌀 직불금으로 타낸 현대서산농장의 경우도 있지만 신청 가구당 평균 수령액은 100만원을 약간 상회할 정도라고 한다. 대부분 영세농가의 수령액은 수십만원에 그쳐 실질적 지원효과는 미흡할 수밖에 없다. 이 알량한 지원금을 공무원과 국영기업체 임직원 등 부재지주들이 앞장서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문둥이 콧구멍에 박힌 마늘 씨까지 파먹은 파렴치 행위다.

쌀 직불금을 가로채는 수단도 지능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새로 쌀 직불금을 신청한 논이 13만8908필지에 달한다고 한다. 타작목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벼농사를 짓는 땅이 갑자기 이 정도로 늘어날 이유가 없다. 공장용지에서도 쌀 직불금을 타낸 사례가 있었던 만큼 상당수 땅들이 벼농사와 무관한 상태에서 쌀 직불금이 신청됐을 개연성이 높다. 쌀 직불금이 자경확인서 한장만 내면 너도 나도 타먹을 수 있는 눈먼 돈이라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며 아무 땅이나 들이밀고 푼돈이나마 챙기겠다는 심보들이 발동한 것이리라.

요즘 시골의 병의원과 한의원에는 침을 맞거나 물리치료를 받으려는 노인들로 북적인다. 수확철을 맞아 온종일 땡볕에서 몸을 놀려야 하는 고된 중노동으로 어깨와 허리 통증에 시달리는 농업인들이다. 그러나 뼈가 휘어지고 살이 무르는 고통이 가져오는 결실은 허망하다. 비료값, 농약값, 농자재값, 기름값, 농기계 할부금 등을 떼고나면 자신들의 인건비도 남지 않는다. 대출받은 영농비 상환은 어림없는 일이니 평생 빚쟁이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농민들은 FTA와 시장개방이 국가경제를 살리는 유일한 출구라는 논리에 밀려 생업을 양보한 사람들이다. 배가 가라앉기 전에 누군가 희생해야 나머지를 살릴 수 있다는 압박을 받다가 그 '누군가'로 지목돼 배 밖으로 떠밀려진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나눠주기로 한 구명조끼를 배안에서 가로채는 행위나 농민이 받아야 할 쌀 직불금을 사회적 강자들이 약탈하는 행위는 '패륜'에 가까운 범죄행위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이번 문제가 불법 집행된 쌀 직불금 회수와 관련 공직자 징계로 끝나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피멍이 든 농심을 달래는 것은 두번째 문제이다. 무엇보다 최소한의 사회정의와 양심을 유지하기 위해 엄정한 사법처리가 따라야 한다. 정부도 깊이 반성하고 농민을 더 이상 시대의 천덕꾸러기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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