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문백전선 이상있다
207.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2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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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521>
글 리징 이 상 훈

"왕비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죄송하옵니다"

"아, 그 그랬던가"

호위무관 장산은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장산으로서는 지금 그녀가 하는 말이 도통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가 젊은 시절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면서 이유 없이 싸움질을 했던 것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나.

시녀는 장산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는 재빨리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일전에 돌아가신 저의 아버님께서는 살아생전 무관님께 진 빚을 꼭 되갚아 드려야겠다며 입버릇처럼 늘 말씀하셨사옵니다. 그런데 다행히 딸인 제가 무관님께 그 빚을 대신 갚아드릴 수 있게 되었네요.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무관님께서는 아무 생각마시고 왕비님의 명령 그대로 저자의 속창자를 확실하게 꺼내놓도록 하세요. 이것만이 무관님께서 살아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옵니다."

"아니, 그 그건…."

장산이 당혹스런 표정을 짓자 시녀는 이런 말을 남기며 자리를 총총 떠나갔다.

"왕비님께서는 반드시 사람 하나를 몰래 뒤따르게해 정말로 무관님께서 바라박의 속창자를 끄집어냈는가를 알아보실 것이옵니다."

장산은 다소 기가 막히긴 했지만 그녀의 말이 결코 헛된 조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장산은 바라박을 수신왕비의 어머님 묘소로 끌고가자마자 그의 배를 즉시 갈라버렸다. 그리고는 그의 창자를 손수 끄집어내어 무덤 봉분 주위를 칭칭 감아 돌렸다.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까지도 이런 꼴을 면하지 못하게 될 것인즉…. 바라박, 내 입장을 이해해 주게나.'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장산은 몇번씩 이렇게 중얼거리며 비참한 꼴이 된 바라박에게 마음속으로 용서를 빌고 또 빌었다. 장산은 창자가 몽땅 다 뜯겨나간 바라박의 시체를 짚단으로 똘똘 말아가지고 부하를 시켜 그의 집으로 보내주었다.

다음날 아침.

장산은 호출 명령을 받고 수신 왕비 앞에 서게 되었다. 수신 왕비는 겉으로는 몹시 화가 난 척 그러나 무척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장산을 이렇게 꾸짖어댔다.

"아니, 내가 농담으로 그런 말을 했는데 자네가 그냥 곧이곧대로 행하면 어떻게 하나"

"왕비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죄송하옵니다."

"참나. 내가 앞으로는 자네 앞에서 농담도 못하겠구랴. 그나저나 돌아가신 우리 어머님께서 피냄새가 진동하고 비린내가 폴폴 나는 바라박의 속창자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하실까"

수신왕비는 겉으로 언짢은 듯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마냥 즐거워하는 기색이었다.

"저어, 제가 지금 당장 왕비님 어머님의 묘소로 가서 봉분 주위를 칭칭 감아 돌렸던 바라박의 속창자를 몽땅다 거둬 버리겠사옵니다."

장산이 이렇게 말하고 난뒤 거북스런 자리를 막 뜨려고 하자 수신 왕비는 즉시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럴 필요 없네. 당장 그걸 치운다면 남들이 보고 뭐라 하겠나 이상한 짓을 저질러 놓고나서 자기들이 생각하기에도 몹시 민망한 짓이니 얼른 치우는 거라며 손가락질 할 테지"

"그, 그러면…."

"가만 놔두면 저절로 썩어 문드러지거나 쥐, 개미, 벌레 같은 것들이 야금야금 뜯어먹어 치울 것이니 아무 염려 없을 걸세. 그나저나 자네가 타고 다니는 말이 너무 약해 보이던데 이래가지고야 어디 군무(軍務)를 제대로 행할 수 있겠는가 내가 좋은 말(馬)로 바꿔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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