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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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10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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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이 영 창 <수필가>

동해안 최초의 울기등대는 지난 1906년에 세워졌으나 러·일전쟁 이후 해군부대가 주둔하면서 부근에 1만5천 주의 해송림이 조성되었다. 그가 자라 등댓불이 보이지 않게 되자, 1987년 위치를 옮겨 촛대모양의 등대를 새로 건립하여 동해안을 따라 항해하는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청잣빛 하늘과 코발트빛 바다를 그은 수평선이 돋아나 관광객을 끈다. 높이 솟은 등대를 바라보며 불가사의한 전설이 생각난다.

아프리카 대륙 이집트 연안에는 알렉산드리아라는 아름다운 항구도시가 있었다. 바로 그 앞에 파로스라는 섬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 이 섬에 거대한 등대가 있었다. 그 꼭대기에는 거대한 이동식 거울이 달려 있어서 35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거울에 반사되는 불빛을 볼 수 있었다. 그런가하면 태양광선을 모아들여 떠 있는 배를 불태울 수도 있었다. 이 등대를 만든 사람은 소스트라테스라는 이집트의 건축가였다. 이 등대가 완성되어갈 무렵, 당시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는 소스트라테스에게 '제왕 프톨레마이오스 항해의 수호신을 위해 이 등대를 만들다'라고 대리석에 새겨 넣으라고 명령했다. 왕은 대리석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보고 기뻐했다. 세상 사람들이 길이길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리라 생각하면서.

세월이 흐른 뒤 이 명문은 완전히 허물어져버리고 말았다. 그 뒤 놀라운 것은 허물어진 명문 뒤에 나타난 글귀였다. '크니도의 테크시프리노스의 아들 소스트라테스 항해의 수호신을 위해서 이 등대를 만들다'였다. 그는 회반죽 위에 대리석 가루를 입히고 그 위에 글자를 새겼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진짜 대리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영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이나 신라 첨성대를 만든 주인공은 루이 14세와 선덕여왕이 아니라 건축가, 기술자, 과학자라는 점을 생각하면서.

1000년 후 알렉산드리아는 정복되었다. 그때 알렉산드리아의 경쟁 상대는 콘스탄티노풀이다. 알렉산드리아가 아랍 문화와 산업중심이라면 콘스탄티노풀은 기독교의 비잔틴 문화와 상업 중심지였다. 하지만 파로스 섬의 등대 때문에 콘스탄티노풀은 열세를 면치 못하였다.

어느 날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비밀지령을 내려 알렉산드리아에 사신을 보냈다. 사신은 사람을 풀어 소문을 퍼뜨렸다. 등대 밑에 옛 이집트 왕의 금은보화가 수없이 묻혔다고.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 이집트 관리들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이윽고 알렉산드리아 왕 칼리프에게 알려졌다. 칼리프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마침내 등대를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철거작업이 반쯤 진행되었을 때 자신이 어딘가에 속았음을 깨달았다. 급히 작업을 중단하고 옛 모습대로 복구하려 하였지만 이미 불가능했다. 그만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없는데다 거대한 거울도 이미 산산 조각나 알렉산드리아로 들어오는 배들을 인도할 길잡이는 없어지고 말았다. 금은보화에 대한 욕심이 천 년 등대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것이다. 그 후 알렉산드리아는 패망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등대는 있었는가 울기등대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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