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꿈
로봇의 꿈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4.05.0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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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뉴욕에 살고 있는 도그(Dog)와 그의 반려로봇, 둘은 만나자마자 단짝이 되었다.

함께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컴퓨터 핑퐁 게임을 하다 잠들며 다리 밑에 앉아 석양을 즐겼고 손을 잡고 센트럴파크를 누볐다.

해변으로 놀러간 그날마저도 둘은 세상 재밌는 하루를 보냈다. 바다 속을 헤엄치고, 높이 솟아올라 물속으로 다이빙하며 둘 만의 추억을 만들었다. 그 둘 뒤로는 둘만의 음악 `September'가 흘렀다.

해변의 즐거운 하루는 깊이 빠져든 낮잠으로 끝났다.

해질 무렵 모두가 떠나버린 후 단잠에서 깨어난 도그는 로봇이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았다. 애를 써보았지만 날은 저물었고 내일 날이 밝으면 수리 상자를 들고 와 데리고 가리라 마음먹고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눈만 깜빡이는 로봇은 괜찮다며, 잘 기다리겠다 눈짓으로 인사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 이별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가왔다.

해변은 다음해 여름까지 굳게 닫혔고 로봇은 해변에 누워 가을, 겨울, 봄을 지낸다.

도그를 만나러 가는 꿈을 꾸고 또 꾸며 혼자 남겨진 외로움과 버려질 것 같은 두려움을 이기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다리를 빼앗기고 고물상에 팔려가 온몸이 부서져 흩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 찾아온 새 친구, 너구리 파스칼은 다 부서져버린 그에게 새로운 다리를 선물하고 두 개의 카세트 테잎이 들어가는 오디오로 몸통도 만들어 준다.

로봇은 너구리 파스칼의 수리공 일을 도우며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 삶에도 그들의 음악 `Happy'가 흐른다.

4월이 어느새 가고 5월이 왔다. 절기가 변하니 시간이 오고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시간 위에 사는 우리가 변하고 움직인다.

4월을 밝히던 꽃들은 이제 사라졌다. 화려하던 튤립, 수선화, 무스카리, 벚꽃, 복사꽃은 이제 내년을 기약한다.

대신 이팝나무에 쌀알 같은 꽃이 피고 아카시아가 매달리고 모란과 작약이 한창이다. 곧 장미도 화려한 자태를 뽐내리라.

봄꽃은 수명이 짧아서 더 아쉽다. 수다스럽게 확 피었다가 어느새 사라진다.

아마도 초록으로 온 세상이 덮이기 전에 꽃으로서의 생식능력을 다하려는 봄꽃의 결정일 터, 그래도 짧은 개화기가 아쉽기만 하다.

생명 있는 것은 다 정해진 기한이 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마음으로는 보내지 못한 탓에 한동안 깊은 물속에 잠겨있는 기분이었다.

부모가 돌아가면 모두 죄인이 된다지만, 끈 떨어진 연이 되어 공중을 표류하는 기분은 그동안 받은 벌 중에서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도그와 로봇처럼 사람의 관계는 누가 잘못하지 않아도 헤어질 수 있고 다시는 못 만나기도 한다.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려니 또 다른 인연이 돌아오려니 이해해야 하는데 말이다.

도그와 로봇 덕분에 좋은 헤어짐, Good bye를 생각해보게 된다. 도그가 좋아하던 September를 들으며 도그만 바라보며 살던 로봇은 너구리 파스칼이 가장 좋아하는 Happy를 들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두 개가 들어가는 카세트 테잎처럼 `September'도 `Happy'도 모두 로봇 안에 있다. 언제나 꺼내서 들어볼 수 있는 음악으로.

여전히 헤어짐과 깨어짐은 숙제처럼 남아있다. 헤어질 인연 그리고 깨어질 관계가 얼마나 아플지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힘을 내본다.

작년에 지고 자취조차 없어진 장미 줄기에서 새순이 나고 새로운 꽃봉오리가 신비롭게 맺히듯이 시간은 이어지고 새로운 생명은 잉태된다. 5월은 그 생명의 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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