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 그 무거운 짐에 대하여
헤어짐, 그 무거운 짐에 대하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2.0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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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화의 문학칼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읊조리는 이형기 시인은 지는 꽃잎마저 아름답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별이 내 일이 되고 나면 이별이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이별은 가슴 아픈 절망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성숙을 위한 필요소로 접근하여 낯설면서 잊혀지지 않는 한 구절이 되었다.

이윤경 시인의 시집 '빈터'(2006·문학마을)는 이별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별은 눈 속 가득 눈물을 채우고 떠난 당신에게 아픔이다. 그리고 당신이 떠난 후에 자신마저 잃어버린 화자('이미 나는 없는데', '절망' 제 9행)에게도 이별은 아픔을 넘어서는 절망이다.

또한 '낙지는 울면서 기어간다'('낙지' 제 10행)고 말한다. 일상에서 탈출한 낙지 한 마리,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웃음이 될 수 있는 낙지 한 마리는 울면서 기어간다. 즉 객관화한 화자 자신의 모습과 화자 내면의 외침이 겹쳐진다. 이러한 화자의 울음은 마음속으로 내출혈을 일으켜 '마음 안에 티눈 씨 박힌다.'('사랑' 제 1행)

이윤경의 시를 읽는 즐거움은 시적 화자가 사물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새로운 것을 발견해가는 즐거움을 엿보는 데 있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진 아픔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낙지'라든지 '티눈 씨'를 도두보이게 하여 자기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다. 사물 너머의 이면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윤경의 시는 화석화하지 않고 살아있다. 상실의 아픔을 넘어서는 방식에서도 그러하여 독자에게 움직이는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오늘도 당신 그리워 그 마음 너무 무거워/아침 산길 내려오며 나무에게 나눠주고/한낮 들길 걸으며 들꽃에게 나눠주고/덧없이 하늘 바라보다 구름에게 나눠주고/그래도 남은 것/석양을 좋아하는 잠자리 날개 위에/다 얹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는데/깊은 밤 창문 앞을 지나는 달/하루 종일 나눠준 그리움/다 이끌고 와 건네주고 가네 ('하현달' 모두)

화자는 떠난 임 그리워하는 마음을 아침부터 나무와 들꽃과 하늘과 구름. 그리고 잠자리 날개 위에 저녁까지 다 나누어 주었다. 하루 종일 나누어 주었으니 화자의 마음은 솜털처럼 가벼워졌을 터이다. 그런데 화자는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하고 하루 종일 나누어 준 그리움의 조각들을 헤아리고 있다. 어쩌면 아침부터 나누어 주었다고 믿는 것들을 다시 거꾸로 거두어들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깊은 밤 창문 앞을 지나는 달이 하루 종일 나누어 준 그리움을 이끌고 와 건네주지 않는가. 이렇듯이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은 시집에 골고루 다양한 모습으로 숨어 있다.

'안개꽃으로 피고 싶다/아직 내 가슴 속에/뿌리로 있는 너를 찾아가서/수천 송이 꽃으로 너를 만나고 싶다/향기로운 내 말들이/네 가슴에 닿아서/한 다발 안개꽃으로/하얗게 웃고 싶다'

-'한 다발 안개꽃' 제3연 모두

시들고 마른 안개꽃의 뿌리를 통해 잉태된 그리움을 볼 수 있다. 반복되는 그리움의 편린들은 화자를 그로부터 일정한 거리까지 밀어 놓았다. 그리하여 화자는 이제 울어도 마음이 편하고, 웃어도 마음이 편한 경지('편지 3')에 이르게 된다. 떠나는 이의 울음과 웃음을 볼 수 있었기에 마음의 편하다고 하니 이제까지의 태도와는 다르다. 이는 처음의 '빈터'를 향해서 놓인 다리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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