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윤 승 범 <시인>새 정부가 영어 교육을 강화하겠단다. 반가운 일이다. 이제는 초등학교 때부터 국어보다는 영어를 더 친숙하게 배우고 중·고등학교 영어 시간에는 영어로만 수업을 하겠단다. 학생들의 실력이 부쩍 늘고 세계화에 더 근접할 것이니 다행한 일이다. 영어를 못하는 학생은 학교 수업을 따라 갈 수 없으니 사교육을 더 받아야 할 것이고 잘 하는 학생은 더욱 더 잘 하게 될 터이니 국제적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
이제는 외국에 나갈 필요가 없는 사람도, 영어를 하지 않아도 될 사람까지 모두 영어를 하게 된단다. 세계화 추세가 대세니 너도나도 영어를 해야 한다. 장터에서 나물을 파는 할머니도 영어를 하게 됐으니 외국인이 와서 나물 값을 묻거나 길을 물어도 대답을 할 수 있게 됐다. 국가적 망신을 면하게 됐다. 좋은 일이다.
요리사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자격증을 취득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경우다. 영어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만 집중적으로 배우면 될 것을 굳이 너남없이… 그것도 공교육의 체계에서… 강요한다는 것은 획일화된 국가적 행패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영어가 그렇게 높은 대접을 받는 만큼 국어는 점점 천대 받을 수 밖에 없다. 어느 대통령 후보가 노상 말했던 단어가 있었다. '네거티브'라는 말이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사전까지 찾아 봤다. 꼭 그 단어를 써야 했을까 어느 후보는 방명록을 쓰는 데에도 맞춤법이 틀려 누리꾼들의 조롱을 받은 적도 있었다. 영어는 유창하게 써야 하고 국어는 틀려도 실수라고 넘어가야 한다는 말일까 걱정스러운 일이다. 언어는 그 민족의 정신이며 영혼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잘 살고 싶은지는 몰라도 정신을 놓고서는 더 잘 살고 싶지는 않다.
어느 시인의 옛 시이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장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백석 시인의 '모닥불'
위의 시를 굳이 해석하지는 않겠다. 너무나 슬프고 아름다운 시니까. 그렇지만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한국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어쩌면 한번도 접해 보지 않은 사람도 있겠다. 우리 것은 소홀히 해도 되고 남의 것만 좋다고 하고, 정신은 놓아도 좋고 물질만 풍요롭다면 그 길을 가겠다는 정책이 반갑고 반갑다.
이제 대한 민국은 민주 공화국이 아니라 영어 공화국이다. 대한 민국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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