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차이
소리의 차이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4.04.2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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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다 비워낸 음료수병을 입술에 대고 무심코 불어본다. 귓전에 청아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 공간에서 어쩜 이리 맑은 느낌이 전해오는지 그만 놀라고 말았다. 신기함과 함께 아이처럼 자꾸만 불기 시작한다.

비어있는 공간에서도 소리는 살아 있었다.

공기의 마찰음을 타고 소리가 귓전에 닿기까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

마치 사람에게서 나는 어떤 소리든 비교가 되고 있었다.

가깝게 직관적으로 들리며 느낄 수 있는 소리, 그리고 한참을 헤아려보며 갈피를 잡아야하는 미묘한 소리에 대해서다.

감정에 따라 차분하게도 들리기도 하며 때로는 격한 반응으로 돌아와 불편함에 빠지기도 하는 경우를 흔히 겪지 않던가.

가끔은 남편과 설전을 한다.

주고받는 사소한 대화에서도 넘기지 못할 부분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이만큼 살다보니 편해서 그렇겠지만 듣기 싫어해도 일러준다. 나이가 들수록 그것도 가까운 사이일수록 감정의 요동을 감추기가 힘들 줄 안다.

말의 소리에도 모양이 있고 향기가 나는 법, 어찌 그렇게 날을 세운체로 이야기를 하냐며 불편하다고 전한다. 돌아오는 답변은 기대와 어긋난다.

그로 인해 나에게도 불현 듯 만들고 쏟아내는 내면의 소리가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소리에 색깔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눈으로 구분할 수는 있겠지만 깊이 들여다본다면 상대에게 스민 감정의 갈래는 미묘할 만큼 찾아내기 힘들다.

내 경우에는 오랫동안 음식점을 운영해오고 있다. 특별히 내세울 것과 잘 하는 것이 없어도 세월 가고 보니 이제는 어느 한 구석 노련함은 늘어났다.

그 중 하나를 들라하면 고객에 대한 고마움이다. 일상 속에서 항상 생각하는 것은 내 영혼에 담긴 진심이 아닐까 싶다.

귀가 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 고객들의 식탁에서 왁자하게 쏟아내는 소리가 들려와서다.

일상을 마치고 풀어내는 피곤이 그 안에 자갈처럼 스미어 나온다. 그 소리들이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생기 있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식이 없는, 오로지 삶의 현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분위기나 마찬가지여서다.

어찌 보면 시끄럽기가 그만이건만 소리의 운율 속에서 살아낸다는 것에 대한 성실함이 가득 넘쳐난다. 마냥 손뼉을 치며 응원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반면에 빈 깡통소리가 떠오른다. 표면의 물체가 철로 되어 있으니 오죽할까. 요란할 만큼 매끄럽지도 않은 현상에 눈살을 찌푸리고야 만다. 이제는 아니다. 이런들 저런들 눈과 귀에 닿는 데로 차이점은 있지만 소리의 원초적인 본성을 떠올리며 차분하게 듣기로 한다. 한 생명이든 귀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에서 내 잣대로 평가하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는 순간이다.

맑고 청아한 빈 병의 소리, 요란하게 자극을 하는 빈 깡통의 소리, 두 소리의 차이점을 오가며 내 모습을 확인한다. 세상을 살면서 모든 면으로 차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끝없이 좇아가야하는 숙명 같은 길, 돌아서서 후회가 적어야 할 길, 어떤 모양으로 살아야 남은 인생이 후회가 없을지 셈에 들어간다.

이제는 소리의 반응에 판단보다는 민감하게나마 인정하며 수긍하는 쪽으로 생각을 모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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