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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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4.04.1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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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공을 잡아본다. 손안에 쏙 들어온다. 조그만 공과 3개월째 씨름 중이다. 골프공 앞에만 서면 왜 긴장하는지 모른다. 하찮아 보이는 공이 나를 절절매게 한다. 공 하나가 하지 말라는 제약이 너무 많다. 그냥 툭 치면 될 것 같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정적인 내가 동적으로 변화하는 길은 멀어 보인다. 몸치가 몸을 제대로 쓰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백스윙에서 피니쉬까지 부드럽게 이어져야 하지만 공을 내리치려는 순간 머뭇거린다. 점점 바보가 되는 느낌이다. 이렇게 자신감을 잃기 시작하면 끝내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작한 길이니 예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다시 용기를 내야 할 때다.

이토록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공을 자세히 만져본다. 표면에 작은 홈들이 있어 오돌토돌하다. 상처 난 골프공처럼 보이는 홈은 딤플이라고 한다. 오목하게 파인 모양이 보조개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 개에 평균 350~500개의 홈은 골프공을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골프공을 채로 때리게 되면 공은 상승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데 이때 얇은 공기막이 형성된다. 딤플이 없는 공은 공기막으로 인한 공기의 저항을 그대로 받는 것이다. 그러면 비행거리가 짧아진다. 골프공은 딤플을 공기가 스치면서 소용돌이 현상을 만들어 내게 되어 공기 저항이 분산된다. 매끈한 공과 골프공의 비거리 차이는 약 2배 차이가 난다고 알려져 있다.

딤플은 1905년 영국의 한 기술자의 아이디어로 생겨났다. 그 전에는 표면이 매끄러웠다. 우연히 경기를 치른 후에 골프채에 찍혀 굴러다니는 공이 홈이 없는 공보다 훨씬 멀리 날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비거리가 늘어난 상처 난 공을 유심히 살펴본 한 기술자는 홈을 판 공을 생산하였다. 이를 사용해 본 골퍼들은 기존보다 비거리가 늘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지금의 골프공이 된 것이다.

내가 때린 공은 엉망진창이다. 탑볼, 뒤땅, 생크, 온갖 이름으로 정타가 아닌 엉뚱한 곳에 맞는다. 나의 실수로 공이 수난을 겪는다. 골프는 단지 스포츠가 아니라 삶과 자연의 조화를 깨닫게 하는 수행이라고 했다. 공을 쳐 목표를 이루려는 욕구는 오히려 목표에서 멀어지게 하여 집착이 판단을 흐리게 한다. 공을 치려는 의도를 내려놓고 공과 클럽, 그리고 자신이 하나가 되어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어야 된다. 마음의 간섭 없이 몸이 스스로 조화를 이루어야 멋진 스윙으로 이어진다.

골프공에서 인생을 들여다본다. 상처 난 볼이 비거리를 내는 것처럼 여기저기의 상처로 더 단단해지는 우리의 삶도 그렇다. 누구에게나 딤플은 있다. 다른 사람보다 잘 생기지 못한 외모, 많이 배우지 못한 학력…. 이런 약점을 지혜와 인격의 향기로 가꾸어 자기 발전으로 삼는 사람. 이렇게 멋지게 살아가는 삶을 딤플 라이프라고 부른다.

나와 같은 골프 초보자에게 잘 안된다고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즐기라고 조언한다. 취미는 취미일 때가 즐겁다. 욕심이나 다른 목적이 들어가면 스트레스가 된다. 이제 막 한걸음 떼어놓고 벌써 욕심을 냄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프로들의 많은 땀과 노력에 대한 지독한 모독이다.

지금까지의 삶이 그러하듯 골프는 나에게 도발이다. 전혀 꿈꾸어 보지도 않았던 발칙한 도발. 5㎝ 크기의 공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이유는 욕심을 키운 탓이다. 내 앞에 놓인 작은 공. 욕심을 버리면 골프공이 축구공만 하게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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