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봄
대한민국의 봄
  •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 승인 2024.01.0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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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요즘 극장가가 뜨겁다. `서울의 봄'이 천만을 넘었다는 뉴스가 나온 지 오래다. 아쉽게도 필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 꼭 보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분노를 연민과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아직 부족해서라고 자책을 한다. 어쨌든`서울의 봄'에 대한 기사를 자주 접하면서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전두환에 대한 평가는 새롭지 않다.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악(惡)함이야 말 할 것도 없고 그저 좀 더 비열하고 똑똑한 악인이었다는 평이니 말이다. 그런데 정우성 배우가 역할을 맡은 수도방위 사령관 이태신은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필자에게 감동과 충격을 주었다.

나는, 아니 우리는 왜 이태신이란 이름을 알지 못했을까? 물론 계엄의 시대에 반란을 막지 못한 실패한 군인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 후로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 오래이지 않은가. 아주 많은 시간 동안 재평가되고 그의 노력을 알아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일제 강점기를 지내고 친일파를 가려내고 숙청하는 작업에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노력은 명백히 실패했고 다시 친일파들이 정부의 실권을 잡는 일이 반복되었다.

필자가 지적하는 것은 친일파를 가려내고 숙청하는 작업이 잘 못 됐다는 것이 아니다. 그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리고 그로 인한 갈등은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 잘못한 사람을 색출하고 처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 영향도 단시적이고 미미하다.

차라리, 아니 필수적으로 우리는 동시에 진행했어야 한다. 친일파를 가려내는 일과 독립에 일조한 모든 사람을 밝혀서 시상을 하고 대우를 해주어야 했다. 아주 조그마한 기여라도 반드시 찾아내 시상하고 격려했어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부정적 사건이 생겼을 때 그 일의 책임자를 찾아내고 단죄하는 데에 몰두한다. 부정적 사건이어도 분명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 대한 발굴과 시상의 노력이 너무 미미하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잘한 사람들에 대한 시상이 분명하고 대우가 충족되는 일이 반복되었다면 지금의 세상은 분명 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단죄의 역사이고 처벌의 역사였다.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역사이다.

나의 이익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을 원불교에서는 공도자(公道者)라 하고, 교리에 공도자를 숭배하자는 조항이 있다. 간단하다. 공도자를 숭배해야 공도자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명쾌한가. 독립이든 반란이든 인간의 양심과 법도를 지켜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애쓴 공도자를 숭배해야 한다.

단죄와 처벌이 아닌 시상과 격려의 사회가 될 때, 그제야 대한민국의 봄은 마침내 올 것이다.

공도자 숭배에 대한 원불교 교조 소태산 대종사님의 법문을 소개한다.

공도자 숭배의 강령

세계에서 공도자 숭배를 극진히 하면 세계를 위하는 공도자가 많이 날 것이요, 국가에서 공도자 숭배를 극진히 하면 국가를 위하는 공도자가 많이 날 것이요, 사회나 종교계에서 공도자 숭배를 극진히 하면 사회나 종교를 위하는 공도자가 많이 날 것이니, 우리는 세계나 국가나 사회나 교단을 위하여 여러 방면으로 공헌한 사람들을 그 공적에 따라 자녀가 부모에게 하는 도리로써 숭배하자는 것이며, 우리 각자도 그 공도 정신을 체 받아서 공도를 위하여 활동하자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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