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0.16 23: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경구의 동화속 풍경
붉게 타던 저녁놀도 걷히고 주춤주춤 산그늘은 마을을 반쯤 덮고 있었습니다. 기성이는 외할머니가 차려준 저녁밥을 빨리 먹고 집을 나섭니다. 가난한 기성이네는 집집마다 있는 그 흔한 감나무 한 그루 없어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주인 없는 감나무에서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위해 떨어진 감을 줍기 위해서죠.

그러고 보니 기성이의 부모님이 헤어진지가 꽤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기성이는 어머니랑 남게 되었고, 시골에 계신 외할머니 댁에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기성이 어머니는 읍내 삼거리 식당에서 일을 하시는데, 아마 오늘도 건넌마을 입구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오실 모양입니다. 막차 버스는 마을 정자나무까지 오지 않고 건넌마을 구판장까지만 오기 때문에 언제나 일에 지친 어머니는 파김치가 되어오셨지요.

외할머니도 요즘엔 이가 안 좋아 딱딱한 것을 못 드셔 사과도 수저로 벅벅 퍼 드셔야 했습니다. 기성이는 어느새 감나무 몇 그루가 있는 산 끝자락에 도착했습니다.

주인이 없다고는 하니만 왠지 남의 것을 훔치는 것 같아 단 한 번도 나무에 달린 감은 따지 않고 떨어진 감만 주웠습니다. 대부분 주운 감은 작은 돌에 부딪치고 해서 그 상처 사이로 흙과 덤불이 묻어 있었습니다.

기성이는 손으로 가만가만 흙을 털기도 하고 또 입으로 '후∼후∼' 하고 입김을 불어 감에 묻은 것들을 털어냅니다. 그리고 가지고 온 소쿠리에 소중하게 한 알 한 알 담습니다.

맨 위로는 이가 안 좋으신 외할머니를 위해 나뭇잎이나 풀섶에 떨어져 덜 터진 홍시를 얹는 걸 언제나 잊지 않습니다. 집에 오는 기성이는 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얼마만큼 시간이 흘러야 육성회비를 제 때 내며, 내 후년 중학교는 어떻게 갈수 있을는지.

달빛을 받아선지 기성이의 눈에 언뜻 보이는 눈물 몇 방울이 가을날 파란 하늘에 반짝이는 홍시 같습니다. 혹시 누군가 말을 걸어오기라도 하면 홍시가 바닥에 떨어져 터지듯 금방이라도 눈물이 왈칵 솟을 것만 같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