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재정 도둑들
건보 재정 도둑들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3.10.0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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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한 달에 5만원을 못 내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생계형 체납자가 무려 71만세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도 비싼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어서 대책이 시급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6개월 이상 건강보험료를 체납한 세대는 올해 7월 기준 93만1000세대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월 5만원 이하의 보험료도 못 낸 생계형 체납은 71만세대로 전체 체납 세대의 76%에 달한다.

이들 생계형 체납세대는 대부분 극빈층이었다. 공단이 체납 중인 71만세대의 연소득을 분석했더니 1년에 100만원도 벌지 못하는 집이 75%(53만2000세대)에 달했다. 사실상 끼니만 챙기기에도 버거운 세대들이다.

나머지 세대들 역시 궁핍한 형편이었다. 연 소득 100만원 초과 300만원 이하인 세대는 7만4000세대, 300만원 초과 500만원 이하인 세대는 4만5000세대, 500만원 초과 1000만원 이하인 세대는 5만5000세대였으며 1000만원 초과는 3000세대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러한 생계형 체납세대가 해마다 증가한다는 것이다. 2021년 68만5000세대였던 것이 2022년에는 70만8000세대로 늘었고 올해 더 증가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에 따라 건강보험료를 6개월 이상 납부하지 않으면 건강보험 급여 자격이 제한된다.

체납 세대원들은 결국 일반 정산 납부자들보다 병원비를 3~10배 이상 내고 병원을 다녀야하는 셈이다.

이번 조사 결과 생계형 체납자 중 8만2720명이 건강보험 급여 제한으로 병의원이나 약국에 가도 사실상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67.8%(5만 6121명)가 6개월 이상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됐다.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된 체납자 세대원은 상대적으로 비싼 병원비 부담 때문에 아파도 병원 가기를 꺼려해 결국 질병을 더 키우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같은 의료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자체적으로 대책에 나섰다.

우선 공단은 체납 건보료 면제 제도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공단은 지난달 재정운영위 의결을 통해 종전 연소득 100만원 이하였던 면제 기준을 연소득 336만원 이하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2만여 세대 이상이 체납보험료 결손처분을 통해 건강보험 수급 자격을 회복할 전망이다.

다행이지만 보다 유연한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

연소득 500만원 세대까지 면제 기준이 확대돼야 한다. 한 달에 고작 40만원을 버는 사람이 숙식 문제를 해결하면서 건보료 5만원을 과연 부담할 수 있을까.

건강보험급여 허위 청구 금액이 최근 5년간 1억건 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단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최근 5년간 국내 병의원들의 건보급여 허위 청구 금액은 9735만건에 9524억원에 달한다.

적발하지 못한 숱한 사례까지 감안하면 연간 2000만건 이상 수천억원 규모의 건보 재정이 누수되고 있는 셈이다.

딱한 형편의 극빈층의 체납 보험료 챙기기보다 도둑을 더 눈을 부릅뜨고 잡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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