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에 멍울지는 신동인의 시
이슬에 멍울지는 신동인의 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0.05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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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의 문학칼럼
이 석 우 <문학평론가>

'외로움'은 신동인 문학을 관류하는 서정의 주조(主潮)다. 그의 내부에 다 연소되지 않은 외로움이 있어 그 상처의 잎새마다 새로운 의미들이 맺힌다면 그것은 그가 감당해야 할 아름다움이다.

창공의 별을 혼자 남아 헤는 서정의 모습이 깨끗하고 순수해 보인다. 그는 늘 버릴 수 없는 천연기념물 같은 순수 때문에 분노하고 절망한다. 절대 고독과 연결되지만 종교적 성격은 갖지 않는다. 그는 내 생명 네 생명 그리고 풀꽃과 나무들, 그 중에서도 유독 키가 큰 해바라기와 사랑의 묵계(默契)를 버리지 않고 존재론적 주관 주의에 깊게 빠져 있다.

'민들레꽃은 민들레꽃이면 된다'는 민중적 진솔함 그 이상의 역사주의와는 관련하지 않는다. 이 또한 관점에 따라서는 약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신동인 시인과 마주 앉아 있으면 알껍데기를 깨고 있는 병아리 주둥이같이 분주하던 일상이 갑자기 여유롭고 의미 있게 느껴진다. 그는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의 시가 그렇다. 그래서인지 그의 문학을 접할 때마다. 선(禪)의 세계에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갖게 된다.

기실 선(禪)이란 불(佛)에 있어 형식의 틀을 벗어나 깨달음에 닿고자 하는 방법론이다. 삶의 형식에 매달리지 않고 질박함으로 사는 그가 선(禪)을 시법(詩法)으로 삼게 되리라는 예측은 불가능하지 않다.

낯설지 않은 산이나 집이나 들, 그리고 외로운 누님. 그들이 품고 있는 은유들은 무수한 생명력으로 살아 있으나 촌스럽다. 그는 두 번째 시집 '그 곳으로 가는 길'의 자서(自序)에 자신이 길항(拮抗)해야 할 성(城)의 약도를 다음처럼 그려놓았다.

"진한 황토 빛 홍수가 여름과 함께 흘러갔다. 유년의 개울에는 가을 물이 졸졸졸 흐르리라. 처절한 것과 숨막히는 것과 살 떨리는 것들을 버리고 나도 쑥부쟁이 하늘거리는 고개를 넘고 싶다. 그 곳에는 범종도 목어도 법고도 없고, 빈 산사에 산바람 소리 살고 있으리라. 나의 시는 그 곳으로 가는 길가에 뿌려진 작은 들꽃 혹은 조약돌이다. 남보다 검붉은 피를 간직한 천형으로 길을 자주 잃어버리는 나를 위해 남겨 놓은 이정표이다."

그는 사람의 손을 잡으면 놓을 줄 모른다.

이 대목에서 그 누군가는 당황해한다. 어눌한 말투와 천연기념물 같은 그의 순수 때문이다.

그는 한 톨의 가식도 없는 사람이다. 찬찬히 그의 문학 내부를 들여다보면 들꽃들의 침상이 향기 그윽하게 놓여 있다. 길가의 화려한 사람 냄새가 그의 먼 여행의 고독함을 경고하고 위협하는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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