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참회부터 하라
아이들에게 참회부터 하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3.07.0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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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아이가 태어나면 질병관리청이 임시 신생아 번호를 부여한다. 신속하게 국가 필수예방접종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임시번호는 보호자가 출생신고를 할 경우 주민등록번호로 전환된다. 질병관리청은 임시번호를 부여하며 예방접종통합시스템에 신생아의 출생일과 성별, 출생병원, 보호자 인적사항 등을 기록한다. 신생아 임시번호는 아이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국가기관이 확보하게 된다는 점에서 약식 출생신고라 할 만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확보한 신생아 정보가 오랫동안 간과돼 왔다는 사실이다.

다른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부모만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않으면 아이는 행정 자료 어디에도 오르지 못한 이른바 `유령 아동'이 된다. 하지만 정부는 그동안 아이의 예방 접종을 위해 임시번호를 부여받고도 출생신고를 하지않는 부모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는 매년 4분기마다 경찰청, 지자체 등과 함께 만 3세가 됐지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 아동을 전수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의 위기아동 조사는 출생신고가 돼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된 아동들을 대상으로만 추진됐다. 만일 복지부가 신생아 임시번호나 접종 자료를 활용했다면 출생신고에서 누락된 아동까지 보호망에 포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복지부를 감사하던 감사원이 이같은 허점을 간파하고 신생아 B형간염 백신 접종정보를 토대로 지난 8년간 출생신고를 하지않은 영·유아 2236명을 파악했다. 이 중 1%인 23명을 표본조사한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확인됐다. 수원시에서 친모에게 살해된 아동 2명 등 3명의 사망이 확인됐고 1명은 유기 정황이 제기됐다.

복지부는 지난 28일부터 나머지 2000여명의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많은 국민이 이 조사에서 어떤 안타까운 사례들이 등장할 지 마음을 졸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에 직면해 인구절벽 탈출을 국정과제로 삼고있는 정부가 정작 태어난 아이들조차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아동정책은 복지부가 총괄하지만 분만, 임시번호 관리, 접종, 출생신고 등 업무는 건보공단, 질병관리청, 행정안전부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관련 정보들을 통합해 공유하고 활용하는 시스템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다가 감사원 정기감사 후 뒷북을 울리는 복지부의 책임이 크다.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하고 팔려가고 유기된 아이들에게 무딘 행정에 대한 참회부터 하는 게 맞다. 그리고 나서 누수없는 철저한 전수조사를 수행하고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아이가 한명도 없도록 완벽한 보호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이를 분만한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를 하릴없이 붙들고 있다가 이번에 끔찍한 실상이 드러나자 부랴부랴 처리한 국회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호출산제 도입도 전향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경제적 사유 등으로 신원 노출이나 양육을 원하지 않는 임신부의 익명 출산을 보장하고 이렇게 낳은 아동을 국가가 보호조치하는 제도다. 위험한 병원밖 출산을 줄이고 출산 후 야기될 영아 유기 등 범죄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임산부의 양육 포기를 부추기고 부모없는 고아를 늘린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부작용이 예상되긴 하지만 사지로 몰릴 수 있는 아이들부터 구하는 것이 급선무다. 일단 시행하고 제도 보완에 사회가 지혜를 모을 일이다.

미등록 출생아만 문제가 아니다. 지난 3월 복지부 전수조사에서 7일 이상 무단결석한 유치원·초·중·특수학교 학생이 6871명에 달했다. 이들 중 59명에게서 이상 징후가 발견됐고 20명에게서 실제 학대 정황이 나타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 조사도 장기 결석 중이던 초등학생이 부모에게 학대당해 숨진 사건이 발생한 후 이뤄진 뒷북 행정이었다. 일이 터져 여론이 들끓어야 움직이는 복지부와 국회의 직무유기가 아이들에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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