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 대표 연설이 남긴 것
양당 대표 연설이 남긴 것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3.06.25 18: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지난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국회에서 차례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했다.

상대 당에 대한 저주 수준의 비방이 태반이었다.

그래도 한줌이나마 내용물이 있지 않을까? 이런 마음으로 두 연설문을 체로 받아 거른다면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과 김 대표의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자는 제안 정도가 남을 것 같다.

당사자들은 대단한 결단이라도 한 양 목소리를 높였지만 감동이나 울림을 받았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비방과 맞비방, 야유와 맞야유로 일관된 대표 연설을 국회 견학온 초등학생들이 방청석에서 지켜봤다고 한다.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전할 지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불체포특권 포기는 이 대표가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이후 본인을 포함해 민주당은 한 번도 실천한 적이 없다.

야당 탄압에 눈이 먼 검찰의 무도한 수사를 구실 삼았지만 야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만 거듭되면서 이 약발도 떨어졌다. 민주당은 방탄국회 오명을 아직도 벗지 못한 책임을 온전히 홀로 져야하는 정당이 됐다.

이젠 많은 유권자들이 알고 있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할 뿐이고 심사와 발부는 법원이 한다는 사실을. 민주당이 불체포특권을 고수해야하는 핑계를 대려면 `검찰의 칼춤에 부화뇌동하는 법원의 무도함 때문'이라고 해야 이치에 맞는다.

정작 칼자루를 쥐고 흔드는 법원에는 한마디도 못하는 이유는 삼척동자도 안다. 검찰 타령이 더 이상 여론에 먹히지 않을 시점에 나온 생뚱맞은 선언이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줄리 없다.

이 대표가 실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당내에선 벌써부터 “대표의 사견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터지고 있다.

한 중견 의원은 방송에 나와 “검찰의 부당한 탄압과 횡포에 백기를 든 셈”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갓 출범한 민주당 혁신위원회는 “민주당 의원 전원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서약서를 제출하고 향후 당론으로 채택해달라”고 당에 요구했다.

특권 포기를 공언한 이 대표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시험지를 받아든 셈이다. 조용히 있다가 때가 오면 실천하면 될 일을 굳이 떠들었다가 안팎으로 부담을 자초한 자충수가 됐다. 김 대표는 의석수를 줄이자고 주장하며 여론조사 결과를 들었다. 그러면서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다.

국회의원을 줄이자는 물음에 찬성 답변이 압도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찬성 여론의 본질은 `의석수가 너무 많아 문제'라는 게 아니다. 무능, 무책임, 무소신, 무치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국회에 대한 혐오감이 핵심이고, 의석을 줄이자는 것은 그 절망감에 따라붙은 부차적인 바람일 뿐이다.

김 대표의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주장은 국회의원을 `밥값도 못하는 한량'으로 치부한 여론을 받아들인 일종의 자백인 셈이다. 부끄럽게 여겨야 할 여론조사 결과를 당당하게 자기주장의 논거로 삼은 몰염치가 놀라울 정도다.

실현 가능성도 희박하다. 국회서 비례의석 확대를 전제로 한 선거법 개혁논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비례 30석을 없애자는 주장을 한 것은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지역구를 손보겠다는 말이다.

지역구 30석을 줄인다는 것은 곧 현역의원 30명을 정리한다는 의미이다. 죄 짓고도 구속을 피할 수 있는 만능 밥그릇을 포기하고 순순히 물러날 의원이 몇이나 되겠는가? 지역구 통폐합을 시도하는 순간 국회는 나 살고 너 죽자는 전쟁터로 돌변할 것이다. 김 대표에게 그 아수라장을 감당할 역량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입에 발린 소리에 여론이 혹할 것으로 생각한 두 분의 판단력에 많은 유권자들이 이렇게 답할 것 같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모욕감을 줬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