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의자에서 만난 행복한 인생
흔들의자에서 만난 행복한 인생
  •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 승인 2023.06.22 1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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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談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더 잘 느끼게 된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세상이 오롯이 `나의 눈' 안에 가득 들어오기 때문이다. 연둣빛으로 하늘하늘 봄을 알리던 새싹들이 어느새 초록을 덧칠하며 짙푸르게 빛나고 찬 기운을 녹이던 부드러운 햇살은 눈 부신 강렬함으로 뜨거운 여름의 시작을 알린다. 언제부턴가 살기 좋은 봄,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여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여름으로 껑충 뛰어넘는 듯하다. 계절의 변화 때문일까? 우리들의 마음도 큰 폭으로 널 뛰게 되는 것은….

어린 시절 작은아버지 댁에 자주 놀러 갔다. 작은집에는 안락의자가 있었는데 사촌들이 그 의자에 앉아 흔들거리는 것을 보니 참 재미있겠다 싶었다. 아이들이 일어나자마자 필자는 냉큼 의자로 달려갔다. 그러나 막상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대려 하니 마치 의자가 기우뚱 뒤로 넘어갈 것만 같아 기댈 수가 없었다. 몇 차례 더 시도를 하였으나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결국 그 의자의 재미를 맛볼 수는 없었다. “누나는 그걸 왜 못 기대? 그냥 뒤로 해”라는 사촌 동생들의 핀잔에도 곧 뒤로 쏟아질 것만 같은 두려움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 후로도 작은집에 갈 때마다 사촌 동생들의 눈을 피해 그 의자로 올라가곤 했다. 혼자서 몰래 마치 큰 전투라도 치르듯 여러 날, 여러 번의 도전을 이어 갔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패였다. 그러던 어느 날 두 팔에 힘을 잔뜩 주고 팔걸이를 꼭 잡은 채 아주 천천히 등을 뒤로 젖히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드디어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댈 수 있었다. 의자의 등받이와 필자의 등이 마주하던 그 순간의 기쁨은 지금도 기억되는 경험이다. 그토록 원했던 안락의자의 재미를 처음 느끼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은 재미라기보다는 일종의 성취감이었고 의자가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에 빠져드는 나름대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의자를 앞뒤로 흔들어 보다가 점점 더 세게 움직여 보았다. `아! 이렇게 재미나고 편안하구나' 한참을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동생들이 방에 들어와 “누나. 이제 일어나. 나 할 거야.”라고 투정을 부릴 때까지 앉아 있었다.

그 후로도 작은집에 갈 때마다 안락의자에 앉아 혼자만의 행복에 빠져들곤 했다. 어떤 이들은 “왜 그걸 못했어”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유난히 겁이 많았던 나에게 그 일은 도전이었다. 그 의자에 등을 기댈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내가 등을 기대어 앉아도 의자는 절대 뒤로 넘어가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믿지 못하니 두려울 수밖에 없었고,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을 이어가야만 했다. 처음부터 믿을 수 있었다면, 용기가 있었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 우스꽝스러운 혼자만의 싸움을 지속하지는 않았을 터이니 말이다. 의자 하나 믿지 못하면서 사람을 믿는다는 일은 훨씬 더 치열한 마음의 싸움이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쉽기도 하고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때로는 너무 쉽게 믿었다고 후회하기도 하고 때로는 믿지 못해 괴롭기도 하니 사람에 대한 신뢰를 지키는 일만큼 힘든 일도 없을 듯하다. 누군가에게 신뢰를 주는 일도 그러하다. 의도하지 않은 오해를 사기도 하고 의도와는 관계없이 누군가를 실망시키거나 상처를 주기도 하니 신뢰하는 관계를 서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 간에 상당한 노력과 배려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마음 편안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고,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참으로 행복한 인생이다. 오늘도 `내가 먼저 믿어주어야 그도 나를 믿어준다.'라는 진리를 새삼 읊조리며 행복한 인생을 살아 내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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