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님의 보행기
큰형님의 보행기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3.05.1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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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저만큼에서 느릿느릿 보행기를 밀고 오는 분. 한눈에 큰형님이란 걸 알아본다.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기적으로 일어나셨다.

간신히 마당까지 나와 종일 앉아만 계시는 게 안타까워 전동차를 사드렸다. 전동차는 조작이 단순하고 용이하나 연세가 있고 환자시니 조작에 어려움이 많았다. 적응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터득하였고 한 달여 후 비로소 거리로 나설 수 있었다. 거리라고 해야 농촌의 고샅길인데 차나 사람이 다니는 양이 적으니 조작만 잘하면 안전에는 큰 걱정이 안 됐다.

실내에만 계시다 바깥을 나오니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그리고 운전에 재미를 붙이셔 시간만 나면 전동차를 끌고나갔다. 또 나갔다 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놀이 삼아 구경삼아 골목골목 이집저집, 그리고 전답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전동차를 이용하고 몇 달 후. 전동차가 기분 전환을 시키고 생활의 리듬과 활력은 줄 수 있으나 운동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뇌졸중에는 병원치료가 별도로 필요하지 않은 병이다. 많이 움직여 주는 것이 약이고 치료다. 뇌졸중은 옛날에는 중풍이라 하였는데 수족이 마비가 오는 무서운 병이다. 큰형은 두 번이나 풍에 맞았으니 상태가 오죽할까마는 그래도 꾸준한 걷기운동으로 그만하셨던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보행기를 사드렸다. 정확히 말하면 유모라고 할 수 있는데 의료기 상사에 갔더니 어른 유모차 보행기란다. 지팡이 대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유모차는 지팡이보다 훨씬 안정감을 주고 다리 근력을 높여주는 운동으로 안성맞춤이다.

걷기만 해도 행복을 느낄 수가 있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모르고 평생 사는 사람과 걷기의 효능을 깨닫고 날마다 걷는 사람 중 어떤 인생이 행복할까.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계속 걷다 보면 행복이 밀려와서 멈출 수 없을 때가 있다. 걷기에 푹 빠지는 이유는 이러한 워킹하이를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와 함께 걷거나 걷는 도중에 다른 사람이나 동물과 유대관계를 맺으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증가한다고 알려졌다. 옥시토신이 증가하면 세로토닌도 증가한다. 혼자 걸어도 세로토닌이 분비돼서 기분이 좋아지지만 누군가와 나란히 발을 맞추며 걸으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기분에 감사할 것이다.

혈액순환 역시 걸으면 좋아진다. 신선한 산소를 먹으면 혈액은 심장에서 출발해 동맥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을 여행한 다음 정맥을 타고 노폐물 등을 회수하여 심장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심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다리에서 심장으로 돌아오려면 중독을 거슬러야 한다. 이때 혈액이 다시 돌아오도록 돕는 것이 근육이다. 특히 제이의 심장이라 불리는 종아리 근육은 수축과 팽창을 통해서 펌프 역할을 하여 혈액순환을 돕는다.

걸을 때 종아리를 사용하므로 다리에서 심장까지 혈액이 밀려 올라가 혈액순환이 좋아진다. 결론적으로 걸으면 머리가 극적으로 좋아지는 첫 번째 이유는 산소 섭취량이 증가하고 혈액순환이 좋아져서 산소가 돼 골고루 퍼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좀 더 직접적이다. 손발, 눈, 귀 등 우리의 신체는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여 뇌에 전해주고 뇌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뇌 출장 기관이다. 그러니 뇌 출전 기관을 움직이면 뇌를 직접 자극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손과 발을 움직이면 뇌를 사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큰 형님은 오늘도 유모차를 끌고 꾸준히 걷기운동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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