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보는 `상식'
다시 생각해보는 `상식'
  •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 승인 2023.04.13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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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談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지난 겨울은 유난히도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올봄은 유난히도 기온이 요동을 친다. 갑자기 따뜻했다가 다시 추워졌다가 변덕을 부리니, 겨울옷을 집어넣었다 다시 꺼냈다를 반복하며 하늘을 바라보게 했다.

꽃들도 이런 날씨에 적응하지 못했는지 벚꽃이 개나리와 함께 활짝 피어 무심천이 노란빛 분홍빛으로 어우러지고 다시금 쌀쌀해진 날씨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코로나 이후 마스크를 벗고 꽃구경 나온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자연스런 이치에 따르자면 목련이 피고 지고, 개나리가 피고 지고, 벚꽃이 피어야 하겠지만 꽃들도 날씨에 깜빡 속아 한꺼번에 개화해 버린 듯 하다. 항상 모든 일이 상식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으니 날씨도, 자연도 이해해 줘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쌀쌀하던 저녁, 지인들과 식사를 하고 6차선 신호등 앞에 섰다. 한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신호등이 바뀌지 않았다. 그제서야 신호등을 살펴보던 후배가 버튼을 눌러야 했다며 깔깔 웃는다. `그래? 음성 안내가 나왔어야 하는 거 아냐?'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 신호등 기둥을 살펴보니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라며 아래쪽 버튼을 누르고 건너라고 설명되어있다. 누구를 위한 안내인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안내방송이 없으면 대개의 경우는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이것이 상식의 상황 아닌가?

갑자기 오래 전 노인복지관에서 있었던 일화가 떠올랐다. 글을 읽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한글 교실이 사정으로 인해 강의실이 바뀐 일이 있었다.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는데 어르신들이 사무실 문을 열고 “오늘 한글 교실 어디서 해?”라고 물어오신다. 잠시 후 다른 어르신이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오늘 한글 수업 안하는 날여?”하신다. 한 두 분의 어르신이 지나고도 계속해서 어르신들의 문의가 이어지자 필자는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물어 보았다. “오늘 한글 수업 강의실 변경된 거 안내 해드렸어요?'” “그럼요. 해드렸어요. 해드렸는데 왜 이러시지?” “아! 그래요. 잊으셔나?”혼자 의아해하던 중 한국어 선생님이 사무실 문을 살며시 열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한글 교실이잖아요. 안내문을 붙여 놓으셨더라구요.”

그 한 마디에 필자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담당자가 한글 수업이 진행되는 강의실 앞에 `오늘 한글 교실 000실로 변경되었습니다'라고 친절하게 안내 문구를 붙여놓았던 거다. 일반적으로 강의실 변경은 해당 강의실 앞에 안내 문구로 알렸으니 어쩜 그의 행동은 상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글 교실에 참여하는 분들은 한글을 읽지 못하니 본인들이 늘 사용하던 강의실이 왜 비어있는지, 한글 수업이 어디서 진행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사무실 선생님들도 그제서야 “아!”하는 깨달음을 신음처럼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존 한글 수업이 진행되던 강의실로 향했다.

청각 장애인에게는 시각적 안내가 필요하고 시각장애인에게는 음성 안내가 필요하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걸맞는 상식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 사회는 이미 수많은 다양성이 존재하고 하나의 `상식'으로 모든 것을 일반화하는 것은 많은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전화로 음식 배달을 할 수 없었던 청각장애인에게 배달앱을 통한 주문은 일상을 편리하게 하는 상식이며 시각장애인에게는 신호등과 컴퓨터에서 나오는 음성 안내가 상식이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상식이 아니라 버튼을 눌러야 신호체계가 바뀌는 것이 상식이 되려면 그 앞에 섰을 때 시각적 안내와 음성 안내 모두가 제공되어 누구라도 버튼을 눌러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길을 건널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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