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위로는 공감이다
가장 큰 위로는 공감이다
  •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 승인 2023.02.1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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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談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세월은 참 빠르고 빨라서 어느새 눈 깜짝할 사이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취업 후 독립해 버렸다. 그에 더해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인지, 문화의 변화 때문인지, 필자의 사회적 관계망이 소극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점점 저녁 약속이 사라지고 집에서 홀로 여유를 즐기는 시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라마 완방 릴레이를 시작하게 되었고, 한 편, 두 편의 드라마 완방을 마친 후 `천원짜리 변호사'라는 드라마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 드라마는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남자 주인공과 그런 남자 주인공을 지켜주는 여자주인공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남자 주인공이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듯 거리에 누워버린다. 그러자 여자 주인공은 아무 말도 없이 비 내리는 거리, 그의 곁에 누워 온 몸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함께 맞으며 눈을 맞춰 준다.

필자는 이 장면을 보고 마음이 쿵 울리는 감동을 느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비 오는데 왜 이러냐고, 일어나라고 억지로 그를 일으켜 세우려 하지 않았을까? 그만 힘들어하라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소리치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 위로는 저렇게 하는 거구나'라는 깨달음이 왔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 보면 잘 살아내고 있다고 토닥이며 가다가도 때로는 누구나 힘들고 지치고 아픈 시간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누구나 상처받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에 좌절하기도 하고 작은 권력이 행사하는 불합리함에 분노하기도 하고, 상대적 박탈감에 작아지기도 하고, 말하기조차 구차스러운 사소한 일로도 마음이 많이 상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위로의 말을 돌이켜 보니 과연 그 말들이 상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너의 아픔을 내가 안다는 말도, 누구나 다 상처가 있다는 말도, 너만의 고통은 아니라는 말도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말도,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는 말'도 필자에게는 사실 그닥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저 그의 아픔을 들여다보려 노력하고, 공감하려 애쓰며, 이해한다는 오만 대신 힘겨워하는 이의 곁에서 함께 고통을 느끼며 곁을 지켜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하는 깨달음! 드라마 속 장면은 그런 공감을 보여준다. 그의 힘겨움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어떤 말도 필요 없이 그저 비 오는 거리에 누워 함께 비를 맞아 줄 수 있다는 것. 그저 눈을 맞추며 따뜻한 눈빛을 전함으로 가슴으로 볼 수 있는 위로의 몸짓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상대가 느끼는 고통 속으로, 상대가 맞고 있는 거센 비바람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 들어가는 것!

드라마 속 장면의 울림은 바로 이런 것이 진정한 위로라는 깨달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을 견디기 어렵다. 진정으로 위로의 말을 전하고 마음을 전하고자 하지만 사실 그 아픔과 고통의 깊이를 헤아리지는 못한다. 아픔에도 색깔이 있어 제각각 다르고 그것을 견뎌내는 힘도 다르다. 위로의 시작은 `너, 왜 그래? 뭐가 그렇게 힘들어? 너의 잘못이 아니잖아, 그만 괴로워 해'가 아니라 `힘들구나, 너의 아픔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을 때까지 곁에 있어 줄게.' 그렇게 곁에 있어 주는 것에서, 지켜봐 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했다.

진정한 위로는 그 마음을 느끼는 공감이다. 누군가 나에게 공감함으로 위로를 주었듯이 우리도 주변의 귀한 분들의 마음을 공감함으로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기억하자! `가장 큰 위로는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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