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학력
예술과 학력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24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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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1993년 개교한 국립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예술전문교육기관을 표방하고 있다.

시인 황지우가 현재 총장으로 있는 이 학교는 음악과 연극, 영상, 무용, 미술, 전통예술 등 6개 분야의 예술실기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국내 최초의 교육기관이다.

이 학교의 설립이념은 다음과 같이 전제한다.

"예술교육은 학문적인 영역에서 예술을 탐구하는 예술대학과 중세 이래의 도제식 교육을 통하여 직업적 예술가를 양성하는 콘서바토리 형태의 예술 학교가 상호 보완관계를 이루며 발전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우리나라는 이러한 전통의 수용 없이 대학에서 획일적인 예술교육을 수행하여 왔다. 이에따라 학자, 교육자, 예술가의 구별이 없는 교육과정을 통하여 평범한 예술인력만을 양산해왔다. 따라서 사회가 요구하는 전문적, 직업적 예술가의 부족현상을 낳았고, 전문예술인이 되기를 원하는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보다 수준 높고 체계적인 교육기관을 찾아 해외유학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어 왔다." 이 같은 설립이념은 지금 우리 예술계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상황에 대한 설정이다. 문제는 해외 유학을 가지 않고도 소위 전문적, 직업적 예술가를 양산하겠다는 의지인데, 이러한 자신감이 최근 잇따라 불거지고 있는 학력위조와 그 상관관계의 끝이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이다. 학연, 지연, 혈연은 오랫동안 우리 국민정서를 지배하고 있는 3연(然)이다. 이중 지연은 선거 때 마다 극성을 부리는 지역감정의 자극이라는 수법으로 망령처럼 되살아나고 있고, 혈연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수식어를 만들어 냈음에도 가족의 구조가 바뀌면서 점차 엷어지고 있다. 그러나 학연은 소위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는 표현대로 마치 고래심줄 같은 끈질김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지 않은가. 이쯤에서 예술실기를 전문적으로 교육함으로써 전문적, 직업적 예술인을 양성한다는 취지와 문화계를 강타하고 있는 학력위조 논란의 차이가 있기는 한 것인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광주비엔날레라는 FINE ART적 분야에서 비롯된 파장의 시작이 유독 대중예술인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인지도 슬금슬금 궁금해지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학력위조는 바람직스럽지 않은 일이 분명하다. 더욱이 예술이(순수예술이거나 대중예술이건 간에) 진실성을 근거로 감동을 추구하는 행위라는 절대명제를 염두에 둔다면 그 같은 위선은 대중에 대한 속임수이자 기만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의 혁혁한 전과()이거나, 자기반성의 일환으로 집중되고 있는 대중예술계, 문화계의 학력위조 파문은 그래도 그나마 아직은 투명한 구석이 조금은 남아있는 해당분야의 특성으로 애써 위로한다.

예술교육이 상당부분 도제형식으로 세습되는 전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고, 또 대학은 '학자, 교육자, 예술가의 구별이 없는 교육과정을 통하여 평범한 예술 인력만을 양산해 왔다'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설립이념이 맞는다 해도 과연 예술가에게 학력이 필수불가결의 조건인가는 곱씹어 생각해 볼 일이다.

혹시 자고 나면 불거지는 문화예술계의 학력위조 파문이 잘 된 놈은 무조건 끌어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지독한 평등주의의 망령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권력이 많은 자들에게는 언감생심 검색의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는 사대주의적 발상의 굴종은 아닌지도 살펴볼 일이다.

다만, 예술가는 다시 철저하게 가난해짐으로써 진실을 표출하고, 또 그보다 훨씬 큰 권력자들도 마음이 투명해지는, 그리하여 진지한 고해성사로 학력 만능주의를 타파할 수 있기를 지금 무더위와 수능에 협공당하는 수험생들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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