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묘향산을 가다
20. 묘향산을 가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22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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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로 젖은 고즈넉한 묘향산의 밤

 

묘향산 가는 차창에 비친 북의 농촌풍경
묘향산을 향해간다. 백두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곧바로 고려호텔 앞에서 집합하여 묘향산을 가게 되어 있다.

일정의 마지막 코스다. 묘향산 만폭동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모두가 기분들이 좋은 것 같다. 나는 역시 오른쪽 앞자리에 앉았다. 가면서 인민들의 삶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평양에서 묘향산까지는 2시간이 넘게 걸릴 것이라는 기사의 설명이다. 고속도로는 양방향 2차로로 되어 있고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양편에는 아카시나무 등이 심어져 있다.

평양에서부터 박용수 시인은 나에게 필담을 통해 어디로 가는 것이냐. 도착은 언제 하느냐를 물었다. 연신 창밖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뒷자리로 자리를 옮기더니 셔터소리가 더 빨라졌다. 고속도로에는 어쩌다 한 번씩 낡은 군용트럭과 묘향산을 다녀오는 버스를 볼 수 있다. 북쪽은 이동수단이 평양 외에는 열악한 모습이다. 묘향산을 향해 가는 동안 북쪽의 농촌 풍경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북쪽소녀의 초란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검정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소녀의 표정이 묘하게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청천강을 따라 차는 제법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멀리 시골마을이 보였다.

버스 안에서는 큰 소리가 나왔다. "사진을 찍지 말라고 그렇게 주의를 줬는데 계속 그러면 문제가 커져요." 박용수 시인의 사진 촬영을 말릴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나는 손바닥에 글을 썼다. '사진 찍으면 안 댐.' 겨우 사진 촬영을 막았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청천강의 여름은 아름다웠다. 멀리 강가에 북측의 인민들이 목욕을 하기위해서인지 모여 있다. 박용수 시인은 또 사진 촬영을 한다. 그의 사진작가정신이 빛났다. 결국 또 한 차례 경고를 먹고 시인은 빙그레 웃는다. 나도 몇장의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무척 조심스럽게 찍었다.

향산호텔에 도착했다. 건물모습이 특이하였다. 각자 숙소를 향해 짐을 풀기로 하고 저녁식사 시간에 만나기로 하였다.

만폭동 등산계획 취소에 아쉬움 남아

만폭동 등산계획은 갑자기 취소되었다. 장엄하고 수려한 묘향산을 오르지 못한다고 하니 괜히 심술이 났다. 북한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승고적 묘향산을 이렇게 눈앞에 두고 갈수 없다니, 한심하다. 묘향산의 높이는 1909m이다. 호텔앞에 맑게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김승환 교수도 나왔고, 신경림 선생도 나와서 바람을 쐬고 있다. 맑은 물을 바라보며 '여기서 청천강이 발원하고 있구나.' 피곤하지 않냐고 신경림 시인에게 안부의 말을 건네니 "너무 재미없다." 딱 한 말씀하신다. 묘향산 입구의 산을 바라보니 예사롭지 않다. 녹색의 푸르고 짙은 초록빛을 내뿜고 있었다. 김 교수와도 대화를 나누었다. 만폭동 등산을 하지 못하니 얼마나 속이 상하는지 집행부에 불만을 말했다. 내일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해준다.

향산호텔 주변을 자세히 돌아보았다. 피라미드처럼 세워진 호텔은 남쪽의 어떤 호텔 못지 않았다. 건물을 배경으로 나와 있는 남쪽의 시인들과 다정하게 사진을 찍었다. 이도윤 시인은 이번에 mbc방송 중계로 나온 시인이다. 키가 크고 사나이답게 생겼다. 향산에 머무르는 하루 동안 산을 보았고, 물을 보았고, 꽃을 보았다. 묘향산의 야생화 참나리 꽃이 붉게 피어 한들거린다.

귓가에 울리는 풀벌레 소리만 아스라이

밤에는 풀벌레 소리 요란하게 울어대는 데 남쪽의 가족들 생각이 났다. 산이 많은 나라 우리나라 명산이 북에도 남쪽처럼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향산의 밤은 조용하다. 어디서 노래 한가락도 들려오지 않는다. 향산 호텔의 저녁 식사는 북측의 최고의 요리전문가가 한 모양이다. 오색 칠색숭어 튀김, 그 밖에 나오는 음식이 대단했다. 맛이야 함께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떤 요리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길 바란다.

북한문학에 대해서 나는 북측의 작가인 오영재 시인에게 물었다. 그는 문학의 대가답게 설명을 잘해준다. 오영재 시인은 북한문학은 전쟁을 주제로한 작품들이 많다. "한설야의 '대동강'이 들판에 불어대는 추억의 분위기가 일품이라면 '두만강'은 소 똥 냄새가 풍기는 듯한 구수한 내음이 진합니다. 소설 '두만강은 첫 장부터 장중하고 의미심장하지요. 제가 북쪽에 살면서 그의 소설을 읽고 감동하였습니다. 남쪽에서는 어떻습니까."

"남쪽의 소설은 태백산맥을 대단하게 칩니다. 분단과 통일을 주제로 한 작품이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태백산맥'도 한설야 대동강 정도는 될까 말까 모르지만, 하여간 남쪽의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수만 독자의 가슴을 울렸죠."

"전 아직 그 작품을 자세히 읽어보지 못했지만, 곧 읽게 될 것입니다. 장편이기 때문에 내가 빌려본다면 학생들이 읽지를 못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한설야 '두만강 다시 읽어 보시기바랍니다."

나는 오영재 시인의 시 한편을 낭송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짧지만 남쪽에 두고 온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절절히 묻어나 있다.

늙지 마시라

늙지 마시라

더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여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이 날까지 늙으신것만도

이 가슴이 아픈데

세월아 섰거라

통일되여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너 기어이 가야만 한다면

어머니 앞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에게 다오

내 어머니몫까지

한해에 두 살씩 먹으리

검은 빛 한오리 없이

내 백발이 된다 해도

어린 날의 그때처럼

어머니품에 얼굴을 묻을 수 있다면

그다음엔

그다음엔

죽어도 유한이 없어

그 세월을 앞당기는

통일의 그 길에서

가시밭에 피흘려도

내 걸음 멈추지 않으려니

어머니여 더 늙지 마시라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여

내 어머니를 만나는 그 날까지라도

- 주체80(1991)년 -

오영재 시인의 늙지 마시라.

이 시는 절창이다. 남북이산가족들에게는 절실히 가슴에 가 닿을 시다. 묘향산에서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간다는 착각을 한다. 실제 묘향산 '향산호텔' 앞은 별로 볼 것이 없었다. 호텔 귀퉁이 돌아 산책을 한 것이 전부다. 내일보게 될 여러 가지 북의 선전물을 하루종일 감상하기 위해 보현사와 국제친선관람관을 보게 될 것이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느낀 것은 오영재 시인의 시를 낭송해서일까. 나는 저녁문화선전대 공연을 끝으로 조용한 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약간의 피로가 겹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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