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와 노천극장
옥수수와 노천극장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1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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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 구 <동화작가>

들마루에 앉아 방학숙제를 하던 혁남이의 이마에 송골송골 수박씨 같은 땀방울이 맺혀 있습니다.

미술숙제인 우리 동네 그리기를 반쯤 그리다 허리를 쭉~펴니 어느 샌가 등줄기도 흥건히 젖어 있었지요.

할아버지께서 비료부대를 오골오골 접어 만들어 주신 큰 부채를 휘휘 부쳐도 한낮 불볕더위는 사르러 질줄 모릅니다.

바로 이때입니다.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텃밭의 옥수수 대공이 일제히 춤을 추듯 이리저리 움직였습니다.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혁남이는 두 눈을 살며시 감아봅니다.

그러자 소라고둥을 한쪽 귀에 대고 듣던 쐐~쐐~ 소리가 생각났습니다. 또 깊은 산속 솔바람 소리도 생각나 코끝에 진한 솔향기가 느껴집니다.

까뭇까뭇한 옥수수수염을 뽑고 몇 겹 벗겨내니 마치 하얀 이처럼 옥수수 알이 가지런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돌담을 지나 혁남이 동생 말순이가 헉헉 숨을 몰아쉬며 들어섭니다.

“오~~빠 읍내 그 있제. 활동 영환가 뭣인가. 아! 맞다. 노천극장이 들어섰다 드라.”

“진짜. 후딱 김칫국에 밥 말아 먹고 가자잉”

“맞다 오빠야. 작년처럼 꼴찌 가서 앞사람 뒤통수만 보지 말구. 빨랑 가서 맨 앞자리 잡자.”

말순이가 밥상을 차리는 사이 혁남인 잘 익은 옥수수 몇 통을 찌기 시작합니다. 노천극장에서 먹으려는 듯합니다.

금세 읍내 노천극장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지고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여 읍내를 향해 개미처럼 줄지어 걸어갑니다.

머리에는 둥그런 달 하나가 신작로를 환히 비춰주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풍금소리에 맞춰 부르던 노래를 불러 보기도 합니다.

혁남이와 말순이는 일찌감치 먹은 밥 때문에 꼬르~륵 꼬르륵~ 허기가 밀려왔지만, 손에 꼭 쥔 옥수수를 쳐다만 봅니다. 옥수수를 노천극장에 가서 먹을 생각에 침만 꼴깍 삼킵니다.

저 멀리서 반딧불이 서너 개가 점점 다가와 한 무더기 아이들 머리 위를 한 바퀴 돌고 또 어딘 가로 급히 떠납니다.

소쩍 소쩍 소쩍새가 우는 평화스런 여름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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