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에 잠들고 눈 뜨고 … 아주 평범한 일상”
“클래식 음악에 잠들고 눈 뜨고 … 아주 평범한 일상”
  • 오영근 기자
  • 승인 2021.01.17 2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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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
19대 총선 이후 서울서 생활... 국제금융 관련 왕성한 활동
이른바 BMW족...고교 친구 7명과 자주 만나 담소 행복
좌우명 '최선을 다 한다' 완전연소·신념은 보직이 꽃자리
회고록 저술 중...어린시절~ 연대별 한국경제 성장사 담아

 

“큰 병치레도 없고요…, 건강문제 그리 걱정하지 않아요. 단단한 체력 물려주신 부모님께 늘 감사하지요.”
올해 83살의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이하 부총리)는 “클래식 음악에 잠들고 클래식 음악 소리에 눈을 뜨는 아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며 인자한 미소로 근황을 대신했다.
19대 총선 이후 줄곧 서울에서 지내고 있다는 홍재형 부총리는 지난 15일 충북대병원의 `와송홀 현판식'에 참석차 고향을 찾았다. 와송은 홍 부총리의 호(號)다. 지난 2005년 설립된 충북대병원 권역별응급의료센터 지정과 예산확보에 도움을 준 홍 전 부총리를 기리기 위해 충북대병원이 응급센터 7층 회의실을 와송홀로 명명하고 1층에 와송홀 현판을 설치했다.

- 오랜만에 고향에 오셨습니다.
“2년여 된 듯합니다. 예전 국회 예산결산위원장 때 충북대병원 권역별응급의료센터 지정에 작게나마 힘을 보탰는데 병원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부끄럽지만 참석하게 됐습니다.”

- 코로나19에다 한파까지 … 녹록지 않은 시절인데 어떻게 지내십니까.
“라디오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잠들고 클래식 음악에 눈을 뜨는 아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요. 낮에는 걷고 지하철 타고 명동에 나가 친구들 만나 세상 얘기하다 버스 타고 귀가하는 이른바 BMW(BUS, METRO, WALK)족이죠. 고등학교 친구들 7명이 자주 만나는데, 관료출신, 언론사 대표, 은행장, 대학교수 출신 등 다양하죠. 그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자연히 진보와 보수로 편이 갈리는데 시국 등 이슈를 편 나눠 토론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합의점을 찾지는 않지만 상대논리를 듣고 이해하려다 보면 정신건강에도 좋은 것 같아요.”
홍 부총리는 누구나 인정하는 경제관료요 국제금융부분의 거목이다. 관세청장, 은행장, 재무부장관, 재정기획원장, 경제부총리 등 그가 두루 거친 경제 요직만 봐도 그렇다. YS정부의 최대 치적인 금융실명제 도입을 주도했고 외환위기 때 IMF로 갈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외환 현실을 청와대 보고라인과 별도로 고(故) 김영삼 대통령에게 설명한 것도 바로 그였다.
홍 부총리는 공직을 떠난 요즘에도 국제금융과 관련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 19대 총선 이후 공직을 떠나신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주로 어떤 일을 해오셨나요.
“충북대 대학원에서 국제재무와 투자론 강의를 2년 정도 했고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념관 건립 범국민추진위원장직을 맡고 있어요. 또 몇 년 전부터는 동북아경제포럼 이사장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몽골 등이 참여하고 있는데 동북아시아 경제협력, 금융협력, SOC협력 방안을 다루고 있지요. 특히 한·일·중·러시아 연해주를 포함하는 경제공동체은행을 만들자는 어젠다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미 중국은 이 아이디어를 차용해 동북아 3성을 위한 독자적 개발은행을 만들었는데 한국도 통일 후 경제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 경제관료 홍재형, 정치인 홍재형 중 점수를 준다면 어디에 후한 점수를 주시겠는지요.
“아무래도 보람은 경제관료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획과 집행을 하다 보니 성과를 나타낼 수 있고…, 하지만 고향발전을 위한다는 측면에서는 국회의원이 훨씬 더 현실적이지요.”

- 경제관료로 일해오시면서 보람된 일을 꼽으신다면.
“83년도 재무부 국제금융과에 들아가 보니 일본은 클럽에 가입돼 있는데 우리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이더군요. 그로부터 재무부차관보시절 OECD 가입을 위한 기반을 다졌고 94년 장관이 돼서 OECD에 가입했으니 정말 뿌듯했습니다. YS정부 재무부장관으로 금융실명제 도입에 일익을 맡았고 경제부총리 때 부동산실명제 도입 등은 제 공직생활의 영광스런 보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현직 국회의원 시절, 홍 부총리의 국회의원 사무실에는 눈에 띄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고향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고향을 빛낸다.” 홍 부총리는 현역 국회의원 시절 3선 의원으로 지역을 위한 일에 누구 못지않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자부한다.

- 국회에 진출하셔서도 예산결산위원장, 부의장 등 큰 역할을 맡으셨습니다.
“내 자랑 같아 부끄럽지만 예산결산위원장 때 참 많은 국비예산을 확보했던 것 같습니다. 오송역이 분기역으로 확정되기 전 역사건립비 200억원을 미리 확보한 것을 비롯해 그해 한해만 20여건에 1조2000억원의 예산을 확보했지요. 늘 고향을 빛낸다는 신념으로 일했던 것 같습니다.(이 대목에서 19대 총선 낙선의 아쉬움이 묻어났다. 당시 4선 의원이 됐으면 지역발전에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란 그의 말에서 그랬다.)

홍 부총리의 좌우명은 `완전연소'다. 화려한 한자어나 경구일색인 좌우명과 견줘 조금은 낯설기도 하다. 덧붙여 설명을 들으니 `매사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였다.

- 좌우명이 좀 색다릅니다.
“굳이 한자어로 쓰자면 지성(至誠), 최선을 다 한다는 뜻이지요. 주영대사관 재무관을 마치고 와보니 재무부가 아닌 관세청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당시 재무부의 외청발령은 귀양살이처럼 여겨졌지요. 하지만 그 자리가 인연이 돼 관세청장이 됐지요. 그 뒤 수출입은행장으로 임명됐을 때, 차관도 못한 퇴직이었지만 기꺼이 수용했지요, 그러곤 외환은행장을 거쳐 재무부장관에 발탁됐고 경제부총리까지 지냈으니, 어느 게 잘된 것인지 모르는 일이지요. 완전연소, 아낌없이 잘 태워야 일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지요. 보직 받은 그 자리가 `꽃자리'라는게 신념입니다.”
- 가족얘기도 들려주시지요.
“아내(전윤숙 여사)는 서울대 선배의 동생으로 선배 집에 놀러 갔다가 인연이돼 결혼했지요. 늘 바깥일에 매달린 저를 만나서 1남1녀의 어진 엄마와 아내로 내조 잘해줬으니 고맙고 감사하죠. 큰 딸은 미국 하버드대 박사 출신으로 모 신학대학원 교수이고 아들은 회사원입니다. 친 손주 1남1녀, 외손자 등 손주가 3명으로 매주 아들, 딸 내외 돌아가며 만나 같이 식사하고 예배보는 게 소중한 행복입니다.”

내로라했던 인사들이면 늘 그렇듯 홍 부총리도 최근 회고록을 쓰고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연대별로 한국경제 성장사를 담아 저술하고 있는데 대략 경제부총리 시절까지 정리됐다고 했다. “사실 자서전은 그리 읽히는 책이 아니지요. 하지만 내가 살아온 시절 사람들은 뭘 생각했고 어떻게 성장했는지, 누군가에겐 참고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사의 큰 틀과 궤를 같이해온 홍 부총리의 인생록이 궁금해졌다.


/오영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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