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은행나무처럼
우리도 은행나무처럼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 승인 2020.10.2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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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가을이 깊어간다. 나는 간혹 사물이나 사람에게 있 깊어간다고 비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계절 중 가을을 제일 좋아하는 것 또한 그러한 이유라 할 수 있다. 9년째, 일주일에 한 번씩 아산으로 독서심리상담 강의를 간다. 오랜 시간 오가는 그 길이 정겹고 좋은 것은 은행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 은행나무 길을 산책할 때면 마주 보고 서 있는 은행나무들이 웅장하고 아름다워 마음이 벅차오르며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가을이 깊어 갈수록 은행나무 길은 절정을 이룬다. 머리 위로는 황금빛으로 터널을 만들며 길은 온통 노란 이불을 덮는다. 평소에도 많은 이들이 찾는 길이지만 가을이 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끌려 그곳을 찾는다.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노라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그윽한 눈길로 그들을 포근히 안아주고 는 것 같다.

그림책 `은행나무처럼(김소연 글, 김선남 그림, 2004)'은 언제나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그루 은행나무 이야기다. 은행나무 두 그루는 처음 서로를 발견했을 때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고, 마음이 봄날처럼 따뜻해지기도 하며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마주 보고 있는 서로의 풍경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던 이들은 꽃을 피우고 열매가 열리면서 마주 보는 것을 잊는다. 그들의 시선이 맞닿았던 공간은 이제 꽃과 잎, 열매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다. 서로를 잊은 채 바라보는 곳이 달라진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는 우리들 같다. 가을이 되어 잎도 열매도 모두 떨어지면 이제 두 그루의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던 서로의 모습을 다시 마주 보게 된다.

`은행나무처럼'은 우리의 인생을 투영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모두가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태어나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족을 이루고 살아간다. 은행나무가 무성하다가 텅 비어지는 것과 같은 시간이 우리에게도 찾아온다. 가족의 기능에는 가족생활주기라는 것이 있다.

텅 비어 버리는 시기를 가족생활주기에서는 자녀진수기라고 한다. 자녀가 집을 떠나 세상이라는 바다로 나가는 단계로, 대체로 40대 중반에서 60대 중반 사이라 할 수 있다. 이 단계는 가족생활주기에서 가장 긴 단계이기도 하며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은 시기이다. 무성했던 잎과 열매가 텅 비어 버린 사이를 마주 보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모든 걸 얻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든 걸 잃은 듯한 느낌이 들 수 있겠지.

이 은행나무들처럼 ……

텅 빈 것 같지만 가득 차 있다는 걸, 너도 느낄 수 있겠니?



삶이 유한함을 깨달았을 때 인간은 불안하거나 우울을 경험한다. 니체는 의미와 목적이 부재할 때 허무주의에 빠지고 불안, 분노와 같은 정신적 공포를 갖는다고 보았다. 하지만 인간은 삶이 유한함을 인정하는 순간 의미를 탐구하기도 한다. 죽음을 직시한 사람이 인생을 더 의미 있고 멋지게 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서로를 다시 마주하면서 현재를 인정하고 이 시기를 결실과 완성의 때로 의미를 부여한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너 없는 나는 존재할 수 없으며 각각의 개인은 다른 사람과의 경험과 대면을 통해 변화된다.'는 말과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오버랩 된다. 나와 너, 그리고 그 사이 존재하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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