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338>
궁보무사 <338>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5.1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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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거지가 된 사람이 무슨 용서를 하겠나"
66. 운이 없다 보면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여기는 한벌성 내에 있는 어느 황량한 들판.

한벌성 공물 마차를 몰래 빼돌리려고 했다가 그만 들켜서 가진 재산을 몽땅 다 빼앗기고 이젠 알거지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버린 내덕과 그의 아내는 아직도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 들판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 있다. 이때 한줄기 시원한 찬바람이 그들 앞으로 휘이익 스쳐 지나쳐 간다. 그제야 문득 정신을 차린 내덕은 갑자기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견디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내덕이가 이제 쫄딱 망해버렸다. 땅 한 뼘 없는 거지가 되고 말았어! 엉엉엉!"

"그러기에 내가 뭐랬수 확실한 거 아니면 절대로 받지 말라고했지. 아이고. 어떻게 해!"

멍하니 있던 그의 아내도 이제야 정신이 번쩍 난 듯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지금 내덕이 울고 있는 이유는 또 있었다. 그때 송절에게 고문을 받느라 아래 그것의 표피 끄트머리가 조금 까지는 바람에 그것이 여간 쓰리고 아픈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서서만 있자니 아프고. 그렇다고 살그머니 주저앉자니 더욱 아프고. 그래서 내덕은 자기 딴엔 머리를 쓴답시고 그대로 발라당 드러누워 몸부림을 쳐가며 계속 울어댔다.

"참내. 뭐 까고 자빠진다더니만."

그의 아내는 그런 자기 남편을 보고 처음엔 가소로운 듯 비웃었지만. 그러나 곧 무서운 현실을 깨닫고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주먹으로 맨 땅을 쳐가며 맘껏 원없이 울어댔다. 바로 이때. 짙은 그림자 하나가 이 부부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깔아뭉개듯이 덮쳐왔다. 깜짝 놀란 내덕은 눈물 콧물로 온통 뒤범벅이 된 얼굴을 반짝 쳐들어 올렸다. 뜻밖에도 그 그림자의 주인공은 그와 절친한 친구 송정이었다.

"여보게. 내덕! 내 아우 송절이가 한 짓 때문에 기분이 몹시 상했지"

송정은 몹시 안쓰러워하는 표정으로 내덕 부부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내덕은 그와의 눈길을 애써 외면해 가며 계속 통곡을 해댔다.

"내덕! 넓은 마음으로 부디 이해해 주시게나. 내 아우가 오죽하면 그랬겠나 형인 내가 대신하여 자네에게 정중히 사과하겠네."

송정이 가운데 부분이 옷깃에 함부로 스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가며 조심스럽게 일어나려는 내덕의 손을 가만히 붙잡아 주며 위로해 주듯이 다시 말했다.

"그만 두게. 이제 완전히 거지가 된 사람이 무슨 놈의 용서를 해주고 자시고 하겠나"

내덕이 송정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덕! 이것 좀 받아 주게나."

송정은 자기 소매 안에서 비단 두루마리 한 개를 꺼내더니 그걸 내덕 앞으로 내밀었다.

"그게 뭔가"

"우리 형제들이 갖고 있는 재산 중에서 제각각 절반씩 떼어내어 한데 모은 거라네. 자네 기분을 몹시 언짢게 해줬던 송절 아우의 것도 여기에 들어 있지."

"아. 아니. 내가 그런걸 왜 받나"

내덕이 여전히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덕! 돌아가신 자네 부모님께서 천애 고아였던 우리 형제들을 돌봐주시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들은 모두 굶어죽고 말았을 거야. 우리들이 어찌 그 하늘같은 은혜를 저버리겠는가 송절 아우는 성주님의 뜻에 따라 어쩔 수없이 자네에게 그런 짓을 저질렀지만. 지금에라도 내덕 자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하기 위해 오늘부터 열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내기로 했다네. 내덕! 이것은 자네가 원래 갖고 있던 재산의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긴 하지만 우리 형제들의 뜻과 정성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이니 부디 받아주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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