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 마을
시가있는 마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5.14 08: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밥이 무섭다
김 용 택

밥이 무섭다 식전 논에 가 논두렁을 걸으며
논을 둘러보면 무섭다
머리가 띵하게 코를 찌르는 농약 냄새
메뚜기 한 마리 없는 논두렁
방동사니 개밥풀 하나 없는 깨끗한 논바닥
올챙이 한 마리 없이 말짱한 논물을 보면
어지럽고 무섭다
논두렁을 걸으며 들을 둘러보면
바작 받쳐놓고 소죽감 베는 사람 하나 없는
적막한 들판을 보면 무섭다
거미줄 한 가닥 갈리지 않은 논을 둘러보고 돌아와
배고픈 밥상에 앉으면
밥이, 밥이 겁나고 무섭다.

시집 '꽃산 가는 길' (창작과비평사) 중에서

<김병기시인의 감상노트>

   
밥이 무섭다. 벌레 한 마리 기어오르지 못하고 죽어간 흙에서 무슨 희망을 찾을 것인가. 풀에는 풀잎 벌레가, 나무에는 나뭇잎 벌레가 살지 않는다면, 풀과 나무는 얼마나 괴롭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며 바람을 맞이할까. 푸나무에 벌레가 없으면 사람의 몸에는 얼마나 많은 불안이 들어설까. 메뚜기도 짐을 싸고 사라진, 개밥풀 없는 논둑이 민둥민둥한, 올챙이 같은 양서(兩棲)의 순례가 멈춘 우리 밥상이 무섭다. 풀을 먹여 소가 살던 때가 사라진 마을에 살포된 대량 생산과 대량 살생이 휩쓸고 간다. 벌레가 오르지 않는 밥상은 죽은 밥상이다. 거미가 집을 짓지 못하는 논은 죽은 들판이다. 밥이 아프고 밥이 무서워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