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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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5.10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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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대체할 방법은 없는가
이 병 하 정책팀장 <일하는공동체실업극복연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은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다.

과거 군사정권 시기에는 우리나라의 초기 자본주의에 대해 천민자본주의니, 식민지적 자본주의니 하는 단어들로 성숙하지 못한 국민의식과 강대국에 대한(특히 미국) 예속성을 꼬집기도 했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군사정권을 막음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지 벌써 15년째 접어들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세번이나 대통령이 바뀌면서 국민들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해 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비인간적인 매서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필자를 비롯한 뭇사람들은 "민주화를 위해 달려왔던 어르신들이 나랏님이 되셨는데, 이제는 제법 살냄새 나는 일들이 많아지겠지"라는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생각도 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냉철하게 짚어보자.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어려서부터 생존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을 배우고, 좀 뒤처지면 어떠련만 남보다 앞서지 못하면 부모나 자식이나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모습이 먼나라 소설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쁘게 움직이던 일손을 놓고 잠시 눈을 감아보자. 깊은 숨을 한 두 모금 내쉰 뒤 이완된 가운데 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우리의 삶살이를 위한 몸부림 내면에 숨어있는, 타인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안타까운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가.

혹시 나는 이런 내모습을 어쩔 수 없는 세상살이의 이치인양 자위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말 우리는 경쟁과 밟고 올라섬의 자본논리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인간다움에 대한 철학은 예전의 추억으로만 간직한 채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시류에 자신을 내 맡겨야 하는가

자본주의자들은 선의의 경쟁 운운한다. 스포츠에서 회자되는 fair play도 떠올려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쟁의 결과는 어떠한가. 승자와 패자에 대한 세상의 대우는 단순한 차이를 넘어 차별에 가깝다. 서로의 주어진 여건과 현실에서 열심히 했더라도 패자는 2% 부족하게 인식될 수 밖에 없다. 로비를 했더라도 혹자는 그것도 능력이란 얼토당토않은 궤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물론 우리 다수는 찜찜함을 느끼면서도 세상이 주는 패자의 불이익을 당연한듯 수용한다. 에릭 번을 비롯한 다수의 석학들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짐승과의 차이를 논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다. 약육강식의 본능에 얽매인 짐승과 달리 생각하며, 서로가 상생(Win-Win)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존재다.

나라의 우두머리가 바뀌면 보다 인간미를 느끼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유아적 방법론은 쓰레기통에 버리자. 이미 15년의 문민정부가 몸소 보여주었지 않은가.

요즘 필자는 아내의 권유로 프란츠 알트의 '생태적 경제 기적' 책을 탐독하고 있다.

프란츠 알트는 우리를 물질경시와 남용으로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을 탕진한 가장 무책임한 세대로 질책하고 있다.

또한 경제와 생태를 부적상관성이 아닌 정적상관성의 개념으로 보면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은 결국 자신의 인간적 본성을 파괴한다"는 조지프 캠벨의 말을 설파한다.

모든 인간이 치고받고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제한된 화석연료가 아닌 무한한 생태적 에너지의 영역으로 사고를 전환한다면 인간다운 삶의 누림이 가능해 지리라는 내용은 우리에게 또 다른 방법론으로 다가온다.

필자는 안타깝게도 짧은 식견과 지식으로 인해 속 시원한 해답을 던져줄 수 없다.

독자에게 인간적인 고민거리를 던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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