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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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4.1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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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길
김 영 석 <북부종합사회복지관 관장>

1987년 4월 17일 그날은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날이다. 군 제대후 전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가, 우연히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직원채용 공고를 보고 원서를 내 합격한 후 첫 출근한 날이다. 사회복지의 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시작한 그 길이 이제 20년이 넘었다.

몇 번의 갈등과 힘든 일도 있었지만, 남들이 말하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20년을 참고 지내온 나 자신이 지금 생각해 보면 기특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날은 혼자서 조그마한 포장마차라도 가서 자축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돌이켜보면 지난 20년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미숙이라는 장애아이를 첫 클라이언트로 만나 지금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미숙이처럼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그마한 힘이라도 나누어주겠다는 그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열악한 환경으로 표현되는 사회복지의 길, 그 길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보면서 나 자신의 무력함을 확인하기도 한다.

사회복지사 말단에서 과장, 부장을 거치면서 난 선배 사회복지사들은 과연 무엇을 해 왔는가에 대해 비판 아닌 비판을 하기도 했다. 말로는 열악하다고 하면서 그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은 해 왔는가에 대해 소주잔 기울이며 열변을 토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나 시설장 입장에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후배들이 나에게 그 같은 질문을 했을 때 과연 난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가 나 또한 후배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무슨 노력을 했는가

시골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소원은 장남이 시골 면직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뜬금 없이 사회복지 한다고 변변한 살림도 못 꾸려가는 모습을 보고, 아직도 아버지께서는 응어리진 마음을 풀지 않고 계시다.

왜 아버지께서는 아직도 장남에 대한 응어리진 마음을 풀지 않고 계실까

사회복지사도 공무원처럼 미래가 보장되고, 변호사 의사처럼 돈 벌이가 되는 직업이라면 아마도 아버지 마음을 벌써 풀리셨을 것이다. 2007년 4월 18일부터는 21년째 다시 시작하는 날이다. 어차피 가야될 길이기에 지난 20년 보다는 좀더 의미있는 마감을 하고 싶다.

이제부터 길어야 10여년 나에게 주어질 사회복지의 길을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아름다운 마감을 하고 싶다.비록 지난 20년간 아버지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드리지는 못했지만, 내 자식들에게만큼은 아버지가 걸어온 길이 결코 후회하는 길이 아니었음을 기억시키고 싶다.

자랑스럽게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마감하고 싶다. 후배 사회복지사들이 그동안 선배는 무엇을 해 왔는가 질문을 해 왔을 때 난 이렇게 해 왔다는 대답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도록, 20년전 첫 날 출근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다시 돌아가, 새로운 출발을 하려한다.

함께 만들어 가는 복지세상, 너와 나로 양분된 세상이 아니고 우리도 하나 된 세상, 그리고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 사회복지사들이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나에게 주어질 마지막 사회복지사의 길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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