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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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순 음성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한국어 강사
  • 승인 2019.07.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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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명순 음성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한국어 강사
이명순 음성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한국어 강사

 

얼마 전 뉴스에 나온 동영상을 보고 많은 사람이 분노했다. 한국인 남편이 베트남 아내를 폭행하는 장면이다. 어린 아들이 엄마 옆에서 울고 있는데 남편은 아내를 무차별 폭행했다. 어느 경우든 폭행은 정당화될 수 없기에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폭행 가해자인 남편을 처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폭행 파문은 일파만파로 커져 다문화가정 결혼이주여성들의 힘들고 고단한 한국 생활이 화두에 올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시기에 베트남 치안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총리와 경찰청장이 고개 숙여 정중하게 사과를 해야 했다. 여성부장관은 피해 여성을 만나 위로했고 정부에서는 철저한 수사와 피해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베트남 현지에서도 폭행 가해자인 남편을 처벌해 달라고 했고 외국으로 시집간 여성들의 수난사에 대해 많은 보도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불과 며칠 후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베트남 아내 폭행 남편의 전 부인이 인터넷에 올린 기사 때문이다. 전 부인이었다는 여성은 폭행 남편과 베트남 아내가 자신의 결혼 생활 중 불륜 관계였으며 자신 역시 결혼 생활 중 남편의 폭언, 폭력, 육아 무관심에 불륜까지 저질러 결혼 생활이 파탄 났다고 했다. 불륜 관계였던 베트남 여성 역시 남편의 폭력은 무섭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남의 가정을 파탄 내고 본인은 온전한 가정생활을 하겠다는 것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며 너무나 속상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폭행 남편은 경찰 조사에서 본인은 본인대로 사정이 있었다고 변명했다. 베트남 아내는 아내대로 살아보고자 했는데 뜻대로 안 됐다며 앞으로 한국에서 아들을 데리고 살고 싶다고 했다. 폭행 남편의 전 아내 역시 두 사람에게 받은 과거의 상처로 고통받으며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폭행 사건이 벌어지기 전 어느 지자체장은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잡종강세'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심지어 `튀기'라는 표현까지 사용해 인권 침해라는 다문화가족의 강력한 규탄을 받고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내가 방문한 다문화가정 베트남 여성들도 페이스북을 통해 기사를 공유하며 내게 기사 내용을 보여 줬다. 같은 나라, 같은 입장이라는 공감대가 있어서 그런지 더 분노했고 속상해했다.

십 년 가까이 수없이 많은 결혼이주여성들과 함께 했다. 그녀들의 가정을 방문해 초기 낯선 한국생활부터 임신, 출산, 자녀 양육에 이어 초등학생 학부모로 성장해 가는 과정들을 함께 해 온 셈이다. 그 과정에서 그녀들의 행복한 한국 생활만 보는 건 아니다. 가정폭력이나 폭언, 시댁 식구들과의 불화, 그리고 끝내 이혼이라는 가정 해체까지 봐야 했다. 부부의 이혼으로 가정이 깨지면 피해자는 아직은 어린 자녀들이다.

흔히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내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도 헤아려 보라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다. 이혼 가정의 부부도 각자의 입장만 내세우며 상대방의 무조건적인 이해만을 요구했다. 언어 소통의 부재와 문화 차이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각자의 입장보다는 상대의 입장을 조금만 더 이해하려는 노력을 다 같이 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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