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지는 나, 뇌 구조를 탓해야 하나?
뒤처지는 나, 뇌 구조를 탓해야 하나?
  • 김태선 충북 특수교육원 과장 물리교육학 박사
  • 승인 2019.04.2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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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김태선 충북 특수교육원 과장 물리교육학 박사
김태선 충북 특수교육원 과장 물리교육학 박사

 

“자 손가락 끝을 깨끗하게 소독했죠? 이제 란셋을 이용해서 손가락 끝을 찔러보세요. 피가 나오면 슬라이드 글라스 위에 묻혀주세요.”

약 10여 년 전 자신의 혈액형을 알아보는 중학교 수업을 할 때였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과학 시간에 ABO식 혈액형(A형, B형, O형, AB형)을 실험으로 직접 해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데 필자는 ABO식 혈액형을 알 수 있는 혈청만이 아니라 당시 가격이 두 배 이상 나가는 Rh식 혈액형(Rh+, Rh-)을 알 수 있는 혈청도 우여곡절 끝에 구입해 무척 고무된 상태였다.

이 정도면 나름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교사라는 자아도취와 내 학생들에게 즐거운 과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열정적으로 수업할 때였다. 자기 손가락을 찌르려니 엄두가 안 나는지 머뭇거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스스로 피를 내는 것이 무서운 아이들은 친구에게 부탁도 하고, 친구가 못 미더운 학생들은 내게 란셋으로 찔러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맨 뒤에 앉은 학생 A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서 옆 짝꿍의 행동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모범생 A가 왜 저러고 있지? 그런데 보고 있는 와중에도 학생 A의 얼굴은 점점 핏기가 없어지더니 급기야는 입술까지 파랗게 질려가고 있다. 자신의 손가락을 찌른 것도 아닌데 피를 보고 놀란 건가? 순간 저러다 쓰러지겠다 싶은데도, 자존심 때문인지 입술을 앙다물고 견디고 있다. 바로 부축을 하여 편안하게 바닥에 앉히는 과정 중에 그대로 뒤로 넘어가더니 정신을 잃었다.

왜 어떤 사람들은 피를 보기만 했는데도 기절하는 것일까?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기 피를 보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피를 보면서 창백하게 질리다니…. 그 이유를 설명하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러나 깊이 있는 의학 계통 설명은 본 글의 주제를 벗어나므로 논외로 보자. 연구 결과를 살펴볼 때 신기한 것은 스스로 자를 때는 기절하지 않지만 피가 나는 것을 보면 기절하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피를 본 사람들 중 약 15%가 기절을 경험하고, 이 중 약 4% 정도가 공포감을 경험한다. 이처럼 실신하는 현상의 핵심 요소는 불안이다. 불안함이 혈압을 급격히 상승시켰다가 갑자기 곤두박질 치게 한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혈압이 갑자기 낮아지면 뇌 속 피가 빠져나가고 의식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을 차린 A를 다독이며 놀랐던 것과 유사한 일들이 요즘 주변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난다. 생명윤리를 걱정해서 동물 해부실험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불안을 걱정하며 많은 실험을 동영상으로 대리 경험하도록 권하는 세상이 왔다.

직접 체험을 버리는 것이 옳은지 결정을 못 내리고 너무 오랫동안 유보해왔다.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내 뇌 구조를 탓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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