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타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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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9.01.0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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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수필가

 

일주일만이다. 어슷하게 썬 고등어를 사이에 두고 무를 큼지막하게 썰어 바닥에 깔고 덮어 매콤한 조림을 만들었다. 싱싱한 재료를 손질해 요리하는 시간은 오로지 맛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매번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은 저녁 밥상머리에 둘러앉은 식구들의 말 수가 줄고 손놀림이 빨라진다.

조리법 없이 반복되는 고등어조림의 재료도 다양하다. 초여름엔 감자와 마늘잎을 넣는다. 말린 시래기를 삶아 넣어도 맛있다. 굵은 소금 뿌려 구워도 좋지만 살진 고등어는 단맛 나는 가을무를 뚝뚝 썰어 넣고 얼큰하게 조려야 제대로 맛이 난다. 생선뿐 아니라 밥상 위에 오르는 모든 음식은 주재료는 같아도 양념과 만드는 법에 따라 맛이 다르다. 콩나물조차 쓰임은 다양하지만 삶아 나물로 무치거나 얼큰하게 콩나물국을 끓여야 제 역할을 다한 듯하다. 어릴 적부터 스며든 맛의 중독이 색다른 맛에 잠깐 신선함을 느끼다가도 다시 옛 맛을 찾게 한다. 기억의 습관이다. 지금처럼 고유의 맛이 반복되지 않고 새로운 맛만 추구한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어떻게 변할까.

일상에서 겪은 모든 일들도 대부분 반복이다. 행복한 듯싶으면 어느새 불행이 다가와 슬픔에 빠져 눈물을 흘리다가도 징검다리처럼 기쁜 일이 선물처럼 놓여 있으면 환하게 웃는다. 날아오르다 추락하는 일도 빈번하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으면 주저 없이 바닥을 치고 다시 날아오르는 사람을 보면 클래식음악을 듣는 것처럼 마음이 안정된다. 험난한 고비를 수없이 넘고서야 생기는 두려움 없는 삶의 경지는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오랜 세월 속에서 다듬고 다듬어 명곡이 되듯이 삶도 가지가 꺾이고 수많은 옹이가 생겨야만 존재가치가 높아지고 겸손함으로 고요해진다. 상처 주는 말, 도움되지 않는 잔소리는 반복될수록 마음을 닫게 하지만 반복되어서 즐거운 것들은 많다.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일도 그러하고 온 마음 다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뜨거운 마음도 그러하다.

산골로 이사 온 지 오 년이다. 인생 한 바퀴를 거의 돌아서야 본향 가까이 왔다. 흙을 밟고 나무와 들꽃에 익숙해졌다. 어릴 적에 몰랐던 곤충들의 습성도 알아간다. 몽환적인 밤하늘은 더욱 좋다. 난로에서 나오는 장작 타는 매캐한 냄새는 어떠한가. 밥 짓는 어머니가 아궁이 앞에 앉아 잔솔가지 태우는 그리움의 냄새라 아련하다. 석쇠에 올려 굽는 고등어의 비릿함마저 금방 숲 속으로 잦아든다. 앞만 보고 떠돌던 날에는 잊고 살았든 여리던 날과의 해후다. 시골아이가 도시의 처녀로 아줌마로 살다 다시 시골할머니가 되어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던 어린 날을 펼쳐놓고 더듬는 시간만큼은 천진해진다. 돌아갈 수는 없어도 반복해서 기억을 꺼내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한랭전선이 자리 잡은 산마을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건 추위뿐이다. 그래도 머지않아 봄은 다시 온다.

반복해서 오는 봄이다. 그 봄을 기다리며 나는 몇 번쯤, 잊을 만하면 가을무를 뚝뚝 썰어 넣고 고등어조림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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