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69>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69>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3.0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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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석

까슬까슬한 '바닥' 정겨운 추억속으로


 

▲ 농공사회에서 폭 넓게 사용돼온 멍석위에 햇보리를 말리는 손길이 분주했었다. <글·사진 : 김운기편집위원> 요즘도 농촌에 가면 농기구 보관창고나 사랑채 벽에 둘둘 말린 '멍석'을 종종 볼 수 있다. 멍석은 짚으로 새끼날을 싸서 엮은 큰 자리인데 대체로 길이 약 3m,폭 1.8m 정도의 직사각형이지만 둥근형의 멍석도 더러 있고, 둥근형 중에도 맷돌질 할때만 바닥에 깔아 쓰는 '맷방석'이라는 것도 있다. 멍석을 일부지방에서는 '짚방석', '망석', '천석(薦席)', '손도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곡식을 말리거나 잔치 있을때 사용 멍석을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짚으로 엮은 큰 깔개'라고 되어 있다. '흔히 곡식을 널어 말리기도 하나 시골 잔칫집에서 마당에 펴고 손님을 맞는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농촌생활에서 멍석은 생활 필수품으로 농가마다 2∼3장씩 비치하고 곡식을 널어 말리는 도구로 사용했다. 멍석을 만드는 방법은 돗자리를 짜듯이 나무로 만든 '틀'에 세로로 다소 굵은 새끼줄을 날고 가로로 짚을 넣고 조여(엮어) 나가는 방식인데 멍석짜기는 1장을 완성하려면 능숙한 솜씨라도 1주일은 걸렸다. 멍석은 농가에서 흔히 곡식을 널어 말리는데 쓰이고 때로는 집이 협소한 농촌에서 잔치를 할때 방이나 마루대신 마당에 깔고 손님을 접대하는데 쓰이기도 했다. 멍석은 길이가 크고 무거워 이동을 할때 편하도록 네귀퉁이에 고리(손잡이)를 만들어 놓기도 하는데 보관은 둘둘 말아 처마밑에 세우거나 서까래에 길게 고리를 늘어뜨려 매달아 놓기도 한다. 농촌에서 9월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다 기세가 꺾일 때쯤 밤이 되면 부잣집 마당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내 동네 잔치가 열린다. 넓은 마당에 멍석을 깔고 모깃불 연기가 피어오르면 동네 사람들이 큰 가마솥에서 쪄낸 옥수수를 나누어 먹으며 한여름 뙤약볕에 땀흘린 농사일을 회고하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아이들은 멍석위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재롱을 부리기도 하고 할머니 곁에서 옛날 이야기를 듣다가 멍석위에서 살포시 잠이 들면 엄마들이 찬이슬을 맞을 끼봐 홋이불을 덮어주던 아련한 고향의 추억이 떠오른다. 또 시골에서 혼례를 치르거나 환갑잔치를 하려면 음식장만도 중요하지만 손님 맞이가 더더욱 중요했다. "자네는 이웃집에서 멍석 6장만 빌려다 마당에 깔게나." "우리 집에도 2장이 있으니 8장이면 마당을 덮을 수 있을 게야." ▲ 다용도로 쓰였던 멍석이 비닐이 개발되면서 농가의 처마 밑으로 사그러지고 있다.

멍석을 깔고 차양(천막)을 치고 나면 잔치 준비가 시작된다. 시골동네 잔치집에서 손님 맞을 준비는 멍석을 까는 것부터 시작되고 교자상이 휘어지도록 각종 음식으로 환갑잔칫상이 차려지고 자식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술잔이 오고가면 손님들이 몰려 온다. 멍석은 사실 깔개로도 많이 쓰이지만 겉보리나 벼·메밀·고추·콩 등 곡식을 널어 말리는 다용도로 사용돼 왔다. 가장 많이 쓰이는 벼말리기는 타작후에 먼지를 날려 버리고 멍석에 널어 햇볕에 말렸다가 갈무리 해서 나락 뒤주에 담는다.

나락 뒤주는 많은 양의 말린 벼를 저장하는 짚으로 만든 '큰 섶'이라고 할까, 나락 뒤주는 먼저 바닥을 둥구미 엮듯이 둥글게 엮어 크기가 다되면 짚으로 엮은 이엉을 두르고 새끼줄로 단단히 묶어 벼알갱이가 밖으로 나오지 않게 이엉을 여러겹으로 두른다.

튼튼해진 나락뒤주는 벼 5가마니를 담을 수 있고 필요에 따라 10가마를 담을 수 있는 큰 것도 있다. 멍석은 곡식을 널어서 말리거나 잔칫집 마당에 깔아 잔치를 치르기도 하지만 여름 홍수때 둑이 터지면 멍석을 덮어 흘이 쓸려나가는 것을 방지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죄인을 멍석에 말아 고문

그리고 조선시대는 대갓집 종들이 죄를 범하면 멍석에 죄인을 눕히고 둘둘말아 매를 치는데 이를 '멍석말이 매'라고 한다.

멍석말이 매는 무서운 고문으로 불효한 자는 멍석에 말고 물을 부어 여러사람이 골병이 들도록 때리는 체벌로 때로는 죽거나 장애인이 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짚멍석이 지금은 비닐로 된 멍석이 발명되거나 기계 건조기의 등장으로 그 쓰임이 줄어들어 시골집 처마 밑에 매달려 있는 신세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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