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석을 깔고 차양(천막)을 치고 나면 잔치 준비가 시작된다. 시골동네 잔치집에서 손님 맞을 준비는 멍석을 까는 것부터 시작되고 교자상이 휘어지도록 각종 음식으로 환갑잔칫상이 차려지고 자식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술잔이 오고가면 손님들이 몰려 온다. 멍석은 사실 깔개로도 많이 쓰이지만 겉보리나 벼·메밀·고추·콩 등 곡식을 널어 말리는 다용도로 사용돼 왔다. 가장 많이 쓰이는 벼말리기는 타작후에 먼지를 날려 버리고 멍석에 널어 햇볕에 말렸다가 갈무리 해서 나락 뒤주에 담는다.
나락 뒤주는 많은 양의 말린 벼를 저장하는 짚으로 만든 '큰 섶'이라고 할까, 나락 뒤주는 먼저 바닥을 둥구미 엮듯이 둥글게 엮어 크기가 다되면 짚으로 엮은 이엉을 두르고 새끼줄로 단단히 묶어 벼알갱이가 밖으로 나오지 않게 이엉을 여러겹으로 두른다.
튼튼해진 나락뒤주는 벼 5가마니를 담을 수 있고 필요에 따라 10가마를 담을 수 있는 큰 것도 있다. 멍석은 곡식을 널어서 말리거나 잔칫집 마당에 깔아 잔치를 치르기도 하지만 여름 홍수때 둑이 터지면 멍석을 덮어 흘이 쓸려나가는 것을 방지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죄인을 멍석에 말아 고문
그리고 조선시대는 대갓집 종들이 죄를 범하면 멍석에 죄인을 눕히고 둘둘말아 매를 치는데 이를 '멍석말이 매'라고 한다.
멍석말이 매는 무서운 고문으로 불효한 자는 멍석에 말고 물을 부어 여러사람이 골병이 들도록 때리는 체벌로
때로는 죽거나 장애인이 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짚멍석이 지금은 비닐로 된 멍석이 발명되거나 기계 건조기의 등장으로 그 쓰임이 줄어들어
시골집 처마 밑에 매달려 있는 신세로 전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