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60>
궁보무사 <260>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1.1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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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앞을 맡게나. 내가 뒤를 맡을 터이니."
27. 재수가 없으려니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그나저나 물건 질이 참 좋습니다요. 호랑이 가죽, 곰가죽, 표범가죽, 사슴가죽, 오소리 가죽, 그리고 값비싼 약재 등등. 성주님께 이걸 갖다드리면 아주 크게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어느 장정이 이마에 줄줄 흘러내리는 진땀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사천에게 말했다.

"자! 출발하자!"

내덕이 갑자기 큰소리로 외치듯이 말했다.

"아니, 이제 겨우 마차에 짐을 다 실었는데 곧바로 떠나나 여기서 잠깐 숨이라도 돌리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떠나는 게 어때"

사천이 내덕에게 말했다.

"어허! 모르는 소리. 하던 일은 계속 해야만 힘이 훨씬 덜 드는 거라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자, 어서 빨리 성으로 돌아가세. 가는 도중에 너무 피로하면 틈을 보아 잠시 쉴 수도 있는 것이니."

"그러나 다만 얼마라도 쉬고서 떠나는 것이."

사천이 이렇게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내덕이 데려온 장정 몇 명이 이구동성으로 크게 외쳐댔다.

"아닙니다. 내덕 어른 말씀대로 내친 김이니 바로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럽시다. 가는 도중에 잠시 쉴 때 쉬더라도."

"빨리 떠납시다."

사천은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알았네. 모두 그렇게 원하니 곧 바로 떠나기로 함세. 자, 그럼 맨 앞 마차부터 출발하게나."

"아, 잠깐! 사천! 자네가 앞을 맡게나. 내가 뒤를 맡을 터이니."

내덕이 사천에게 말했다.

"그래 주겠나 그럼."

사천은 두말 않고 곧장 앞쪽으로 가서 마차를 먼저 출발시켰다. 이윽고 13대의 마차들이 제각각 짐을 실은 채 꼬리에 꼬리를 물듯 열을 지어 비좁은 산길을 따라 떠나기 시작했다. 맨 뒤쪽에 처져있던 마차 두 대는 내덕이 뭔가 손짓을 해보이자 슬그머니 샛길로 방향을 돌려버렸다. 내덕은 모르는 척하며 말을 타고 마차 행렬 후미를 따라갔다.

그런데 샛길로 한참 달려가던 마차 두 대 중 앞서 가던 한 대가 갑자기 딱 멈춰 섰다. 그 바람에 뒤따르던 마차도 덩달아 멈춰 섰다.

"형! 우리 두 사람이 꼭 가야만 해요"

마차를 세웠던 동생 복대가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며 형 모충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수동 삼촌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지 않았니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 둘이 마차 한 대씩 몰고 그곳으로 가서 딱 절반씩만 떼어놓고 다시 돌아오라고."

형 모충이 대답했다.

"형의 마차나 내 마차나 실어 놓은 물건들이 똑같을 진대 두 마차가 가서 각각 절반씩 떼어놓고 다시 돌아올 거라면 아예 한 대만 가서 몽땅 다 내려놓고 오면 될 것 아니오 뭘 번거롭게 두 대씩이나."

"아, 참! 그,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

모충이 자기 마차와 동생 복대의 마차 위에 실려 있는 짐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는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니까 우리 두 사람이 쓸데없이 애를 써가며 그곳으로 함께 갈 것이 아니라, 형님은 마차를 얼른 되돌려가지고 저 행렬 뒤를 따라가세요. 저는 이 마차를 약속된 장소로 몰고 가서 그곳에다 짐을 몽땅다 내려놓고는 빈마차로 재빨리 뒤따라 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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