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73>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73>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1.1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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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와 천연가스의 보고 카자흐스탄
열강들 각축 펼치는 무한한 개발의 땅

멀리 천산 자락에 쌓인 만년설과 도시 전체를 덮은 가로수의 행렬을 뒤로하며 시가지를 벗어났다. 바둑판을 짜 놓은 듯한 반듯 반듯한 시가지를 보면 이곳이 계획 도시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옛 이름 알마타)는 석유 덕분에 활력에 넘치고 있다. 90년대 말부터 미국 등 서방의 석유회사들이 카자흐스탄의 석유와 가스유전 개발에 경쟁적으로 투자하면서 경제가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3대 에너지 보고로 알려져

카자흐스탄은 2000년 이후 해마다 9% 이상의 고속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 중동과 시베리아에 이어 세계 3대 에너지 보고(寶庫)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중앙아시아의 카스피해 지역 석유와 가스 자원의 상당량은 카자흐스탄 영토와 영해에 묻혀 있다. 2002년을 기준으로 석유와 가스의 가채매장량은 각각 285억 배럴과 87조 입방피트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카자흐스탄 정부는 카스피해 북부지역의 180여개 광구에 대한 탐사 및 개발권 입찰을 실시할 예정으로 세계석유 메이저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카스피해에 매장된 방대한 규모의 석유자원은 카스피해 연안 5개국이 해상자원 분배를 둘러싸고 분쟁을 벌이고 있으며, 에너지와 군사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부상하고 있는 지역이다. 특히 해안선 비율에 따라 러시아(19%), 카자흐스탄(27%), 아제르바이잔(18%)은 북부 및 중부 카스피해의 분배 원칙에 이미 합의를 하였다. 그러나 투르크메니스탄과 이란은 5개국이 공평하게 20%씩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최근 들어 서로 간 타협의 여지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은 한반도 면적의 12배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면적에 비해 인구는 1500만명으로 카자흐인 53.4%, 러시아인 30% 등 130여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복합민족으로 고려인들이 약 10만명 정도 살고 있다. 행정 수도 아스타나는 북부지역의 분리 독립 움직임을 무마하기 위해 1997년 알마티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이전하였다.

91년 소련연방에서 독립하였으며, 카자흐어와 러시아어를 공용으로 쓰고 있다. 종교는 카자흐인을 중심으로 이슬람교와 러시아인들이 믿는 동방정교가 있다. 카자흐스탄은 이슬람 국가로 분리되고 있지만, 이슬람적인 모습은 도시에서 거의 느낄 수가 없다. 차도르를 쓰는 여인이나 이슬람식 복장을 하고 있는 도시인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오랜 세월 공산주의 사회 속에서 종교적 억압정책에 영향을 받았고 러시아적인 문화를 많이 받아들인 결과라고 생각된다.

석유가 전체 수출의 50%, 재정수입의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1인당 GDP가 1600달러 정도이다. 그러나 석유산유국이면서도 석유정제 시설이 없어 석유와 가스값이 비싼 편이다. 특히 가스관은 우즈베크 공화국을 통과하기 때문에 우즈베크의 영향을 받고 있다.

 카자흐인들이 사는 전통농원

오후 2시쯤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도로변에는 아름드리 포플러나무가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냉전시대에 군사적 목적으로 공중에서 보면 도로가 잘 보이지 않게 만든 도로라고 한다. 시골마을 골목을 지나 초원지대가 나타났다. 시골마을을 달려 교외에 있는 카자흐의 전통적인 시골집을 방문했다. 몽고식 천막집 파오를 이곳에서는 유르따라 부르는데 카자흐 유목민들의 전통집 역시 비슷하다. 우리와 비슷한 그네가 마당 한편에 있고, 과일나무와 넓은 초원의 풀밭이 있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플라스틱으로 이은 맞배지붕 정자 밑에서 카자흐인들이 먹는 밀가루 빵 조각과 각설탕, 홍차에다 우유를 썩어서 점식을 먹었다. 담백하고 소박한 식사다. 야외용 화덕 아궁이에 나무를 집어넣고 긴 통을 내어 홍차나 우유를 끓인다. 불을 때는 아궁이와 연통은 어린 시절 야외에서 볼 수 있는 우리의 옛 모습과 비슷한 형태다.

기마민족 가옥형태 우리와 비슷

우리 민족도 유목민족의 후예라는 것을 여기서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다. 중국의 국경도시 알렉산고를 넘으며 시야에 들어왔던 카자흐스탄의 시골 마을 집들은 우리의 어느 시골 마을을 보는 것 같아 처음엔 매우 놀라웠던 기억을 생각하면 북방 기마민족들의 가옥형태가 우리와 비슷한 취락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기서 또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중국 한족들의 음식이 매우 기름지고 느끼하며 향료 냄새가 강해 식사하는데 매우 고통스러웠던 것에 비해 이곳 음식들은 담백하고 기름기가 적어 우리 입맛에 맞는 편이다.

점심을 마치고 말을 빌려 탔다. 날씬하고 덩치가 큰 백마를 빌렸다. 이 농장은 주말에 도시인들이 찾아와 말을 빌려 타고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일종의 주말 농장이다. 중국 리지앙의 백산으로 가는 코스에서 모우평(牛坪)에 들려 장족 안내인의 인도를 받으며 말은 탔던 것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다. 모우평이 규격화된 관광상품 이라면 이곳은 그냥 말을 타고 마음껏 가고 싶은 곳을 달리는 농원이다.

마을 주변과 산언덕을 넘어 초원을 달려보는 기분은 이전의 관광지에서 조금씩 맛보았던 말 타기와는 색다른 기분을 안겨준다. 산 능선이나 계곡을 따라 말을 달리거나 푸른 초원으로 뒤덮인 완만하고 부드러운 산들의 허리를 돌면서 알마티 시내를 굽어보는 기분은 서부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사과밭을 지나면서 말 위에서 사과를 따서 한 입 베어 물었다.

개량되지 않은 우리의 60년대쯤의 그런 종류의 작은 사과였다. 아직 덜 익어 신맛이 입안에 감돌았으나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즐거운 추억으로 남는 말타기였다. 산기슭과 능선을 달리면서 마을로 내려왔다. 초원 한가운데 1.5km의 둥근 트랙을 설치하여 달리게 만들었는데, 말에서 내렸을 때 다리가 땅 속에 빠져있는 듯하고 걷는 것이 매우 답답하게 느껴지는 착시현상을 느끼게 만들었다.

 친케트행 야간열차

자이라우농원에서 오후 5시 15분쯤에 출발했다. 6시 10분 기차라 시간이 촉박하여 출발 5분전에 도착하여 허겁지겁 열차에 올랐으나 6시 20분이 다 되어도 열차는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역무원에게 시간을 물었더니 그의 시계는 내 시계보다 20분이나 더 늦었고 정각 6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 와서 다시 시간을 30분 정도 늦게 조정했다. 영토가 넓다보니 시차가 달라서 여행을 하면서 여러번 시간을 교정해 주어야 했다.

오후 6시 10분 친켄트 행 기차가 출발했다. 시내를 벗어나자 철도 연변의 집들과 수십 미터의 아름드리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친케트까지 14시간이 소요되는 기차여행이다. 카자흐스탄의 침대차는 문이 따로 설치되어 있고 잠잘 때 잠글 수 있어 매우 편리했다. 기차가 역에 도착하면 플랫폼이 높아서 창문사이로 물건을 팔거나 흥정하기에 편리하게 만들어져 있다. 승객과 물건 파는 사람들이 같은 눈높이로 대화하고 물건을 주고받는 모습이 매우 생소하고 재미있게 보였다. 가족들이 무거운 짐을 들고 기차 안으로 들어와 챙겨주기도 하는 정감과 활기가 넘치는 기차역이다. 카자흐스탄 남쪽은 천산산맥이 뻗어 있고 북쪽은 끝없는 초원이 펼쳐지고 있다.

알마티 역에서 40분쯤 달리자 작은 비행장이 들판에 나타났다. 60년 대 한국 비행장을 연상시키는 그런 모습이다. 역무원이 와서 침대차 이불 값으로 160덴기를 요구했다. 100덴기는 우리 돈 1000원에 해당되는데 처음에는 왜 돈을 지불해야 하는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앞좌석 아줌마가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아 간신히 의사소통을 해서 돈을 지불했다.

맞은편 침대에 앉은 다나라는 이름의 부인과 짧은 영어지만 소통할 수 있어 퍽 위안이 되었다. 저녁 7시 30분 철길 우측은 녹색초원 좌측은 풀이 말라 황금빛 들판으로 양극화를 이룬 기묘한 초원의 광경이 시야에 들었다.

카자흐스탄은 개인 재산을 인정하는 것 외에는 옛소련 시대 행해지던 행정시스템의 잔재와 부패가 만연하고 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기차에는 열차 한 켠 구석에 뜨거운 온수물이 준비되어 있어 차를 마실 수 있게 만든 것과 에어컨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밤 9시인데도 풀을 뜯는 양떼와 소들이 보였다.

알마티, 여름·겨울 기온 차 심해

알마티는 여름에는 영상 36~37도 정도이며, 겨울에는 영하 10~20도로 기온 차이가 심한 곳이다. 밤 9시 20분 오타르역에 도착하자 기차와 승강장이 바싹 붙어 있어 상인들이 몰려와 창문으로 물건을 팔았다. 이 역에서는 16분 정차하기 때문에 내려가서 물건을 사거나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들판이 어둠 속에 검은 윤곽만 드리운 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어둠 속 저 멀리 불빛 하나 빛을 내고 있다. 그 작은 불빛 하나가 별빛보다 더 지평선을 밝히는 등불처럼 빛나고 있다.

밤 12시 5분 아기울음소리에 깨어 창밖을 내다보니 정차된 기차 옆으로 노점 가게와 식당이 들어서 있다. 기차 옆 7~8m 거리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밤 12시인데도 적지 않은 인파로 넘치고 있다. 제법 큰 역 부근인데 철로변을 따라 긴 시장이 형성되어 독특한 장터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창밖엔 천산산맥이 조용히 누워있다. 밤새도록 기차가 초원을 질주했지만 여전히 광활한 초원이 펼쳐지고 있을 뿐이다.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니 온몸에 온기가 퍼져왔다. 열차는 투루크파시 역에 잠시 정차하여 슬레이트로 지붕을 덮은 집들과 회색빛 물결이 흐르는 마을을 관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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