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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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1.15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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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천 양 희

원고료를 주지 않는 잡지사에 시를 주면서

정신이 밥 먹여 주는 세상을 꿈꾸면서

아직도 빛나는 건 별과 시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제 숟가락으로 제 생을 파먹으면서

발빠른 세상에서 게으름과 느림을 찬양하면서

냉정한 시에게 순정을 바치면서 운명을 걸면서

아무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면서

새소리를 듣다가도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고 책상을 치면서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시적인 삶에 대해 쓰고 있는 동안

어느 시인처럼 나도 무지하게 땀이 났다

※ 연암 박지원의 글 '답경지(答京之)'에서.

시집 '목화밭 지나서 소년은 가고'(현대문학) 중에서

<김병기시인의 감상노트>

시인은 말밥을 먹고 살지 않는다. 시인은 언어로 지은 옷만 입고 살지 않는다. 시인은 말의 길을 무턱대고 가지 않는다. 시인은 정신을 먹고 살아야 한다. 시인은 밥이 되지 않는 글을 데리고 살지 않는다. 시인은 펄펄 끓는 노동의 밥을 익혀 나누는 사람이다. 시인은 자신이 순하게 누운 밥알처럼 지상의 열정들을 끌어와 익힌다. 시인은 제 목숨을 숟갈로 퍼먹을 지라도 발빠르게 얼을 엎질러서 밥을 구하지 않는다. 시인이 시적으로 죽지 않고서는 봄에 씨앗을 돋게 하거나 꽃을 피울 수 없고. 여름에 초록의 세상을 맞을 수 없고. 가을에 씨앗을 거둘 수 없고. 겨울에 죽음으로서 다른 생명에게 양식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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