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양진을 기대하며
이 시대의 양진을 기대하며
  • 최지연 <한국 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16.09.28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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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 최지연

근무하는 대학에서 어제 오후 전교 교수회의 시간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 법에 대한 특강이 있었다. 기계와 산업 설비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물적 자본 시대, 개인적 자질과 기술이 중요한 자원이 되는 인적 자본 시대를 넘어 신뢰, 청렴, 개방성, 통합성을 지향하는 사회적 자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제 청렴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9월 28일, 이제 우리나라도 부패를 척결하고 청렴한 사회를 향한 중요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부패 척결에 대한 염원은 비단 오늘 이 시대의 관심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옛날, 중국 후한 시대에 양진(楊震)이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양진은 공정하고 청렴하여 부정한 접견은 물론 가솔들에게도 채식을 권하고 가능한 탈 것을 타지 않고 걸어서 다니도록 할 정도로 정직한 삶을 살았다. 가까운 친척들이 가족과 자식을 위해 생활 수단을 마련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양진에게 권했지만 그는 후세에 청백리의 자손이란 말을 듣도록 해주는 것 이상으로 후한 유산이 더 있겠느냐며 돈보다는 청렴한 삶을 물려주고자 애쓴 사람이다. 청렴으로 말하면 포청전도 울고 갈 정직한 선비였던 그는 벼슬이 늦어 50세가 넘어서야 고을의 수령으로 나가게 되었다.

양진이 형주 자사를 지내고 동래 태수로 부임하던 중 잠시 한 고을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 고을은 형주 자사 시절 양진의 추천으로 현령이 된 왕밀(王密)이 다스리던 고을이었다. 왕밀은 늘 양진의 은혜를 잊지 못하다가 마침 양진이 자신의 고을에 묵는다는 소식을 듣고 밤늦게 황금 열 근을 싸가지고 양진의 숙소로 찾아갔다.

오랜만의 만남으로 기뻐하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왕밀은 금덩이를 슬며시 양진에게 건넸다. 은혜에 감사한 마음으로 여러가지 물건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마땅한 것이 없어 가져왔다는 왕밀의 말에 정중히 거절하는 양진에게 왕밀은 “밤중이라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라며 재차 권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자네가 아는데 어찌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가?”(天知 地知 我知 汝知, 何謂無知)” 양진의 경고에 왕밀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후한시대에도 인사에 대한 답례로 금품을 주고받는 일이 드문 일이 아니었던지 양진의 이 고사는 후한서 양진전에 미담으로 기록되었다. 황금 열 근을 마다하는 일이 흔했다면 후한서에 한 장으로 남았겠는가?

그로부터 2000여 년이 지난 대한민국도 새로운 양진이 필요한 시대다. 하늘, 땅, 나, 너, 이른바 양진의 사지론(四知論) 주고받는 당사자들을 넘어 천년만년 우리를 지켜볼 하늘과 땅을 두려워하는 이 마음, 김영란법이 아무리 엄하고 란파라치가 아무리 치밀하다고 해도 각자의 마음에 심어진 사지론보다 엄격할 수 있겠는가?

오늘부터 연말까지 공무원들은 ‘조심’하는 시간을 살 것이라 한다. 청탁방지법에 걸려 좋지 않은 사례가 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보다는 하늘과 땅을 두려워하는 ‘조심’의 마음을 지니고자 노력하는 이 시대의 양진이, 우리 모두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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