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호 <여행가>
  • 승인 2016.08.0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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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세계속으로
▲ 최상호

“카톡!”

이른 아침 특별한 친구로부터 생일 축하 문자를 받았다. 만난 지 몇 년이나 흘렀지만 얼마나 반가운 얼굴인지. 이 친구는 스페인에서 살고 있고, ‘알베르게’라는 순례자 숙소 겸 BAR를 운영하고 있는 발비노라는 친구다.

4년 전 우리 가족은 10개월에 걸친 세계여행의 마무리에 대해 고민 중이었다. 프랑스를 마지막으로 리스 차를 반납하고 라데팡스의 캠핑장에서 아프리카로 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나라로 돌아갈 것인가 등 앞으로의 여행 계획에 대한 걱정으로 분주한 연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전부터 고민하던 한 가지 루트가 급부상하였다. Paulo Coelho의 소설 ‘순례자’로 잘 알려진 900km 남짓의 순례자길. Camino De Santiago. 장기간 여행을 하면서 각자가 경험한 것, 마음속에, 머릿속에 담아 왔던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자는 생각에 모두가 공감했다. 다만 900㎣를 도보로 걸어야 하고 아무런 정보도 준비도 없었기에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가야 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결정은 쉬웠다. 급하게 프랑스 길의 시작인 생장 행 티켓을 예매하고, 유럽에서의 100여 일 동안 생활했던 살림살이를 정리했다.

그동안 의지했던 살림살이들을 정리하려니 헤어지기 힘들었다. 허나 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갈 수는 없는 일. 집을 떠나올 때 냉장고, TV 등 가전제품 일체를 기증한 것처럼 또다시 비워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카미노 출발 당일, 우리는 세계여행을 출발할 때처럼 각자의 배낭과 마주했다.

발비노 부부와는 눈 내리던 라바날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인연이 닿았다. 부부가 같이 까미노를 걷던 발비노와는 가벼운 눈인사만 했을 뿐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그날은 오전부터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아이들 걱정으로 다음 마을로 이동하기엔 무리라는 생각에 그곳에 머물기로 하고 숙소와 식당을 찾았다. 하필 주말이라 마트도 쉬고 숙소에 식료품도 모두 떨어져 순례자들 모두 저녁을 굶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그동안 여행의 습관으로 챙겨뒀던 비상식량이 있었고, 그것을 순례자들과 나누기로 결정했다. 조촐하지만 20여 명의 순례자와 함께한 식사시간은 축제 같았다.

받기만 하는 게 미안했던지 발비노는 어디선가 치즈 한 덩이를 가져왔다. 급하게 구해온 듯 온전치 않은 치즈지만 그의 선한 마음이 느껴졌다. 눈 내리는 저녁 우리는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그동안 겪었던 서로의 이야기를 기타 선율과 와인을 함께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까미노를 마무리할 때까지 발비노와는 때론 함께, 때론 따로 걸으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 친구는 그날 저녁의 고마움을 도착하는 알베르게마다 하나의 음식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드디어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헤어지던 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40대 중년의 눈물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무런 대가 없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그것에 대한 감사함. 지구 반대편에 살고 언어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눈물로 모든 말은 사치가 되었다.

오늘은 가볍기만 한 SNS 지만 인사를 건네야겠다.

“H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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