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화 교수 "게임 용어 언중의 언어로 존중해야"
이인화 교수 "게임 용어 언중의 언어로 존중해야"
  • 뉴시스 기자
  • 승인 2016.06.2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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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게임 사전' 오프라인만 출간
게이머 2천만명 "편견 극복위해 기획"

#게임 용어인 '득템'은 '아이템을 얻다'는 뜻이다. 신문 제목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인터넷 게시판에 자주 등장하는 '어그로를 끌다'라는 표현은 '관심을 끌기 위한 거슬리는 행위'라는 의미다. 역시 게임에서 유래한 용어다.

#젊은 회사원들 사이에서는 '캐리하다'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팀워크가 중요한 업무를 할 때 유독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 팀을 성공으로 이끄는 상대를 가리켜 '하드 캐리하다'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이는 팀플레이가 중시되는 도타(DoTA)류 게임에서 유래했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으나 가장 저평가된 문화콘텐츠인 게임 관련 용어를 다룬 '게임사전'이 나온다.

출간을 앞두고 28일 오전 이화여대 SK텔레콤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책임 집필을 맡은 이인화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는 "언어적 지위 체계에 따른 게임의 사회적, 문화적 저평가는 게임 산업의 정체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게임은 한류 수출 콘텐츠의 핵심이고, 현재 게이머의 수가 200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사회가 공인하는 언어의 지위를 아직 갖지 못했다"며 '게임사전'을 펴낸 이유를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따르면 실제 게임은 지난해 K팝의 11배, 영화의 132배에 달하는 30억 5000만 달러의 수출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게임 용어들은 '인식 가능한 지식의 대상'으로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다.

'게임사전'의 기획과 재정 후원을 담당한 엔씨소프트문화재단의 윤송이 이사장 역시 이날 영상 인사말을 통해 "한국의 소중한 문화자산이자 자랑인 게임은 자주 쉽게 폄훼됐다"며 "게임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을 극복하고, 건강한 게임 문화를 발전시킬 방법을 찾다가 '게임사전'을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1996년 '바람의 나라'를 기점으로 올해는 온라인 게임 상용화 20주년을 맞는 해다. 이인화 교수는 "'바람의 나라'에사 나온 아이템이라는 용어가 게임 사전에 등록하는데 20년이 걸렸다"며 "사전은 지식의 자질을 부여하는 문화적 위계화의 표지인데, 그간 게임 플레이어들의 사용언어를 비속언어로 여겼다. 이제 언중의 언어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판사 해냄을 통해 30일 정식 출간될 '게임사전'은 이 교수를 비롯해 한혜원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 윤혜영 외 디지털스토리텔링 학회 연구자들이 집필에 참여했다.

2010년 4월부터 2015년 3월까지 5년간 국내 최대 게임 웹진(인벤)의 게임별 사용자 커뮤니티, 게임 정보, 게임 뉴스 항목의 텍스트를 데이터베이스화한 것이다.

추출된 말뭉치 용량은 텍스트 기준 7.4기가바이트(GB)에 이른다. 말뭉치는 언어 연구를 위해 텍스트를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모아놓은 언어 자료다.

개발·플레이·미학·문화·시대별 대표 게임선 등 관련 용어를 포함한 표제어 2188개를 정리했다. 일반인 대상의 표제어 자유 공모를 비롯해 사전 편찬 기간만 1년6개월이 걸렸다.

국내 첫 게임사전이다. 그간 개발 과정의 전문용어들에 관한 설명집 정도가 있었다. 인터넷서점 아마존 등을 검색하면 미국도 게임 개발자 사전 정도만 있었던 것으로 조사된다.

이 교수는 이번 사전이 게이머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통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게임 세대와 비게임 세대가 서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게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1년 중 몇백밤을 함께 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현실에서 만난 친구들 이상"이라며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는 나이, 성별, 계급 지역을 초월해서 친구가 되는데 게임어는 오프라인에서 이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했다.

한 교수 역시 동의했다. "아이들이 하교 길에 나누는 대화의 반 이상은 못 알아들을 텐데 그 중의 반은 게임 속에서 주고 받은 단어"라면서 "미래 지향적으로 보면 '게임사전'이 부모와 아이들의 소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화석언어가 아닌 살아 있어서 뜻이 확장될 수 있는 언어를 담고자 했다"고 부연했다.

그녀는 '게임사전'이 게임 용어가 표준어의 지위를 획득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도 기대했다. "국립국어원 안에서도 인터넷 용어 등 살아 있는 언어에 대해 탐구가 한창"이라며 "'게임사전'이 역으로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사전'은 현재 오프라인 출간만 예정됐다. 온라인 공개 시점은 고민 중이다. 이재성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전무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동시 출간을 바라는 분들도 있지만, 비영리재단 입장에서는 게임과 관련해서 너무 실용적인 측면만 부각되는 것이 부담된다"고 말했다.

"출판업의 배려도 있다. 이번 일을 하면서 출판업계가 인쇄물 사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이번 출간이 사전의 미래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고 덧붙였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감수를 맡은 점도 눈길을 끈다. 이 교수는 "이 전 장관님은 사전 편집자셨다. 그 분이 쓴 '세계문장대백과사전'은 글을 쓰는 분들이라면 다 읽었을 것"이라며 "이 전 장관님의 사전 편찬 노하우를 배워서 '게임사전'에 적용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게임사전'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대표 게임도 정리했다. 엔씨소프트문화재단과 해냄 등은 앞으로 '게임사전'의 표제어 추가와 변경 등 증보판 또는 개정판 등에 대해서도 고민해나간다는 계획이다. 1304쪽, 6만8000원,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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