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향', 그리고 3·1절
영화 `귀향', 그리고 3·1절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6.02.28 1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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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연지민 취재3팀장(부장)

영화 ‘귀향’이 지난주 개봉했다. 개봉일을 불과 이틀 남겨두고 대형 영화관이 상영을 결정하면서 영화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개봉 첫날인 24일 청주의 한 상영관을 찾았다. 평소 관객이 많지 않았던 영화관에는 이미 젊은 관객들로 가득했다. 객석을 메운 사람들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진다는 친구의 말처럼 개봉 5일째를 맞은 영화는 28일 현재 관람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감독이 14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기획한 작품이다. 그리고 7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영화제작에 투자해 어렵게 만들어졌다. 화제성이 많았음에도 지난해 개봉관을 잡지 못하고 미루어지다 겨우 개봉일자를 잡았고, 그나마 개봉 날이 마지막 상영일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컸던 영화이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해 말 한국과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합의하면서 이 영화는 국민의 관심을 촉발했다. 일본의 사과 없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영화보기 운동으로 이어졌고, 영화의 완성도를 따지기에 앞서 ‘애국심으로 꼭 봐야’ 하는 영화라는 은근한 심적 압력도 작용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이지 영화를 보기에 앞서 뻔할 것 같은 이야기에 두려워 보고 싶지 않다는 이들도 많았다. 여자의 성을 도구화한 일본의 잔악한 행태를 가만히 앉아 목도하기엔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일 것이란 우려가 앞선 탓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달랐다. 일본의 잔악한 과거를 보여주는데 초점을 두기보다 상처받은 할머니들의, 비루한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한을 씻어주는데 앵글이 맞춰져 있었다. 시골 소녀가 위안부로 끌려가기까지의 과정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것임에도 들녘에서 벌어지는 슬픔의 전주는 잔학사만 있지 않았다.

죽지 못한 영혼들에 손을 내밀듯 감독의 앵글은 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비수를 꽂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우리를 먼저 어루만져 주었다. 씻김굿을 통한 살풀이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국가와 국민에게 보내오는 위안이자 소리였다.

큰 굿판을 벌이며 흰 수술을 흔들어대는 은경의 몸짓에 기구한 할머니들의 삶이 다 털려 깨끗해지길 바라는 염원이 객석까지 전해졌다. 죽은 자들을 위한 진혼굿을 따라 나비들이 날아올라 날갯짓하며 돌아올 때 영화 ‘귀향’ 의 귀자가 왜 돌아올 歸가 아니라 귀신 鬼자인지를 알게 해준다.

자본의 논리로 사장될 수 있었던 이 영화가 흥행할 수 있는 것은 애국심이 아니라 인간애에 대한 화답이기도 하다. 돈으로 풀어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답이 분명히 들어 있다. 상처는 보상이 아니라 진정한 사과에서부터 매듭을 풀어나가야 한다. 금전적 보상은 상처를 악화시킬 뿐이다. 마음의 상처는 돈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생의 한을 가슴 속에 묻고 살아야 했던 할머니들에게 국가는,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치유의 시간을 드릴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전국 49개 지방자치단체장은 3월 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3·1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 전국 행동의 날’을 개최한다는 소식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남긴 한·일 양국 외교장관의 합의를 비판하고, 일본정부의 진정 어린 사과와 책임을 끝까지 묻고 한국정부의 각성을 촉구할거라고 한다. 3·1절 기념일을 위한 행사로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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