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23배 불리기
집값 23배 불리기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6.02.2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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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얼마 전 영국의 한 신문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런던에서) 어떻게 재운(財運)을 만들까(How To Make Property Fortune)’였는데 편집자는 친절하게 부제로 정답까지 알려줬다. 답은 바로 ‘Move Every Year For 20 Years(20년 동안 매년 이사를 해라)’였다.

글을 쓴 기자는 1995년부터 2015년까지 런던의 부동산 시장, 특히 주택 시장의 상승세를 주목해 집값 변동 추이를 분석했다.

그리고 20년 전에 런던에서 5만 파운드(약 9000만원) 짜리 연립주택을 사서 2015년까지 매년 한 차례씩 집을 사고팔면서 런던에서 매년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였을 경우 수익률을 추산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5만 파운드로 시작한 자산은 118만2045파운드, 우리 돈으로 21억2700만원이 돼 있었다. 20년 동안 20차례 이사를 하는 방법으로만 무려 23배, 2300

% 이상 자산을 늘릴 수 있었던 것이다.

노동력보다 자본이 훨씬 더 돈을 잘 번다는 ‘피케티 이론’을 여실히 증명해 보인 기사였다.

런던의 살인적인 집세는 이미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시드니, 홍콩을 젖히고 세계 1위다.

우리나라에서 월세 50만~60만원 정도인 18㎡형 규모의 대도시 원룸 주택의 월세가 무려 260만원이나 한다. 이 살인적인 월세는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탓이다. 런던의 평균 주택 가격은 1채당 우리 돈으로 10억원에 육박한다. 방 2개가 딸린 우리나라의 15평형대 아파트의 가격이 보통 8억원을 웃도는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최근 수년 전부터 런던에는 난데없이 ‘보트 피플’까지 등장했다. 런던의 보트 피플은 비싼 월세를 피해 템즈 강 위의 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십 수년 전에 저소득 빈민 계층을 시작으로 등장했는데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 심지어 지방 의원까지 선상 생활을 하고 있다.

런던의 주택 가격 상승에는 세계 부자들의 부동산 사재기가 한몫을 했다. 세계 무역 금융의 중심지로 자리하면서 자산가들이 몰리자 부동산 가격은 급등하기 시작했다.

특히 런던 유학과 저택 구입이 엘리트 집단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중동의 부호들은 런던의 주택을 ‘쇼핑하듯’ 사들이고 있다. 최근 3년 새 40% 이상 급등하고 있는데 대부분 중동 자본이 상승세를 주도했다.

홍콩도 비슷한 주택난을 겪고 있다. 홍콩 반환 이후 중국 자본이 밀려들면서 부동산 가격이 수직으로 상승, 도시 빈민이 늘고 있다. 세계 경제 중심인 뉴욕 역시 땅값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심지어 비싼 땅값 때문에 묘지에서는 관을 (면적을 적게 차지하도록) 수직으로 매립하는 지경이다.

우리나라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의 인구는 5년째 가파른 감소세를 보이며 인구 1000만명 선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30, 40대 유출 인구가 많았는데 7만3000여명이 빠져나가 18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체 유출인구의 61.8%가 주택 문제로 서울을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전세가 상승과 월세 전환 등이 주된 이유였다.

세계 대도시들이 겪는 반갑지 않은 집세 대란. 결국, 근본적인 원인은 수도권으로의 자본 집중화 탓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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