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보다 불행한 대통령
광부보다 불행한 대통령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6.02.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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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석탄 캐는 광부의 아들과 대통령의 아들 중 누가 더 행복할까. 누구나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답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답을 하는 나라의 아이들이 있었다. 바로 독일이다.

지금의 50~60대, 베이비 붐 세대들이 초·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들었던 얘기다. 1960년대에 우리나라는 독일(당시 서독)과 친하게 지냈다. 분단국가로서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던 서독이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무담보 차관을 제공하면서부터다.

그때 우리나라는 광부와 간호사를 대거 독일에 내보냈다. 해외 취업 전선에 뛰어든 그들의 급여를 담보로 차관을 얻은 것이다.

광부들은 지하 수백 m 아래 갱도에서 석탄 먼지를 물 마시듯 입에 넣으며 일을 했고, 간호사들은 치매 환자들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피땀 흘려 외화벌이를 했다. 한국 정부는 그 대가로 5억9000만마르크(약 1억 달러) 규모의 차관을 얻어 길을 뚫고 다리를 놓고, 제철공장을 만들어 한강의 기적을 일구기 시작했다. 당시 10여 년간 독일에 파견됐던 광부 수가 7만 9000명, 간호사가 1만 명이나 된다.

대통령의 아들이 광부의 아들보다 행복하지 못하다는 말은 그때 독일에 갔다가 온 광부나 간호사들의 입에서 나왔다.

“서독은 광부와 대통령의 월급이 비슷하다. 그런데 대통령은 바빠서 집에 자주 들어오지 못하지만, 광부 아버지는 똑같은 돈을 벌면서 일은 적게 하고 집에 일찍 들어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놀랍게도 독일은 역시 지금도 광부가 행복한 나라다. 여전히 세계 최강 복지국가 중 하나다. 자녀의 대학교 등록금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나라, 은퇴 후 노후 생활이 보장되는 나라. 최근에는 중동 난민들에게 국경을 개방하고 난민 가족에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1인당 매달 50만 원을 생활비로 제공하겠다고 해 주변 국가를 놀라게 했다.

독일은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다. 마이스터 정신이 일찌감치 꽃 피워진 독일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연봉 격차가 없다. 당연히 정규직, 비정규직의 차별도 없다. 노동자들이 대접받는 나라이기도 하다. 중소기업과 노조를 특별히 보호하는 정부의 정책은 사용자의 횡포, 즉 갑질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중소기업 집단의 카르텔을 인정해 준 것이다. 그 결과 독일은 대기업과 하청 관계인 중소기업과의 임금 격차가 거의 없다. 이런 토양 속에 세계 일류 강소 기업들이 즐비한 나라가 됐다.

노동의 가치를 중요하게 인식한 정부는 지난해 최저 임금을 시간당 8.5유로(1만1000원)로 못박았다. 우리나라(5580원, 2015년)의 2배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이유다.

딱한 건 우리네 사정이다. 독일 정부는 필연적 공생 관계인 대기업과 하청업체, 노조와 사용자를 한울타리에 가둬놓고 강력한 규제와 당근으로 조련해 세계 경제 대국이 됐다.

그러나 우리는 겨우 실효성마저 의문인 저성과자 해고 지침 따위를 놓고 노사, 노정이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 팔이 몸통을 향해 썩어가고 있는데 손가락만 살피는 의사. 환부를 제대로 못 짚었으니 처방이 나온 들 별무신통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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