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 속 골목문화를 보다
`응팔' 속 골목문화를 보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6.01.24 1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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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연지민 취재3팀장(부장)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종료되었지만 인기는 여전히 등등하다. 출연 배우들의 일상이 화제로 올라오고, 대중적 감성 코드를 담아내는 나영석 PD의 여행 프로그램에 배우들이 동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벌써 작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지상파 못지않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케이블 방송의 역사를 쓴 일명 ‘응팔’은 전 세대의 열광에 가까운 박수를 받으며 복고바람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음악의 복고는 모처럼 부모와 자식 세대가 노래로 교감할 수 있게 되면서 문화의 저력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응팔의 무성한 입소문에 뒤늦게 시청에 가담하면서 배우들의 명연기나 추억의 장면보다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골목 풍경이었다. 아침이면 누군가의 비질 소리가 들리고, 이리저리 뛰어노는 아이들과 마루에 앉아 수다를 떠는 동네 아주머니의 모습이 있던 곳. 그로부터 불과 20여 년 만에 우리 곁에서 아주 멀어진 골목의 잔영은 드라마가 끝나도 TV 앞을 떠나지 못하게 마력을 발휘했다.

그동안 골목에 대한 조명이 없던 것은 아니다. 10여 년 전부터 가난한 동네에 남아있던 골목에 주목한 예술가들은 골목벽화로 단장하며 새롭게 조명했다. 드라마 촬영으로 인기를 끈 청주 수암골 역시 달동네라는 이미지 속에 골목을 아름답게 꾸미는 예술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어둑한 골목에는 환하게 웃는 어린아이들의 얼굴이 그려졌고, 천사의 날개와 알록달록 그림 모자이크가 걸렸다.

이처럼 전국 벽화마을이 주목을 받으면서 부활한 골목은 그러나 피상적인 조명에 그쳤다. 관광객의 발길을 모으는 방식은 사진찍기 좋은 장소로 각인되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전국에 비슷한 벽화가 그려지면서 골목의 특별함도 빛을 잃어가고 있다. 이는 골목문화를 간과한 탓이기도 하다.

골목의 생명은 문화다. 응팔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도 골목이라는 내피에 깃든 삶을 들여다본 골목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골목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하고, 이웃의 어려움을 알아주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가난이 부끄럽지도 부자가 대단하지도 않은, 어른은 어른대로의 문화가 있고 아이들은 아이들의 문화가 있어 공존하면서도 계층 간 갈등이 아니라 계층 간 받아들이는 문화. 응팔에 전 세대가 공감하고 감동을 한 이유는 바로 사람 중심의 골목문화이다.


응팔에서 보여준 골목문화와 지금을 대조하면 극명하게 달라진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오히려 이웃이 무서워 문을 걸어 잠근 채 권력을 좇고 돈을 좇아 극단적인 자본주의 얼굴로 살아간다. 자식을 죽여 냉장고에 넣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부모. 쫓아다니는 남자가 싫다고 묶어 놓고 칼로 찔러 죽여버리는 여자.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온 가족을 죽이고 자살하는 가장. 갈수록 강퍅해지는 대한민국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벼랑으로 떠밀리고 있다.

문명의 발달과 물질적 풍요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공허를 느끼고 정신적인 빈곤을 느끼며 살아간다. 눈부신 과학기술이 만들어 놓은 기계에 갇혀 사람들과의 관계단절로 인간적 온기마저 상실하고 살아가고 있다.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골목문화의 저력을 새롭게 드러냄으로써 헬조선 대한민국의 답을 찾아야 할 때다. 골목을 끼고 들어선 집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골목문화는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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