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양요 문수산성전투 주역 한성근 재조명
병인양요 문수산성전투 주역 한성근 재조명
  • 심영선 기자
  • 승인 2015.08.2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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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향문화 23집에 공적 소개 … 서울대 논문 인용·승정원일기 등 기록 발굴도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문수산성 전투에서 프랑스 함대를 물리친 괴산 출신 한성근(韓聖根·1833~1905)이 재조명 됐다.

(사)괴산향토사연구회 김근수 회장은 27일 발표하는 ‘괴향문화’ 23집에 ‘병인양요 문수산성전투 유공 한성근의 활약 고찰’을 주제로 그의 생애와 공적을 소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한성근은 당시 프랑스 함대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사건을 빌미로 1866년(고종 3년) 조선 강화도를 점령·약탈했을 때 문수산성 전투에서 이를 물리쳤다.

괴산지역 자료에는‘괴산군지’와 ‘연풍지’에 전설(대우가 맺어준 인연)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와 ‘괴산군 설화집’에 민담(시루봉에 묘 쓰고 벼슬한 한성근)으로 전해졌고 생몰연대 등 생애와 공적 자료는 없었다.

김 회장은 1928년 1월 송헌석이 펴낸 ‘병인양요-일명 한장군전’이란 제목의 한글 소책자와 2003년 10월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조재곤 선임연구원이 논문 ‘병인양요와 한성근’을 발표한 것을 보완·인용하고 ‘승정원일기’ 등의 공식 기록을 발굴했다.

한성근은 1866년 병인양요 때 순무영(巡撫營)의 초관(哨官)으로 집사(執事) 지홍관(池弘寬)과 함께 문수산성을 지키다가 프랑스 함대를 격파했으나 병력 부족으로 패했다.

한성근은 1833년 8월 괴산군 칠성면 쌍곡리에서 태어나 1905년 12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소는 칠성면 외쌍곡 야산에 ‘正憲大夫 正二品 兵曹判書 耆老所堂上 淸州韓公 聖根之墓(정헌대부 정이품 병조판서 기로소당상 청주한공 성근지묘)’란 묘비와 함께 있다.

김 회장은 “이번 ‘괴향문화’ 발간 책자를 통해 한성근이‘괴산 출신 한성근’으로 기록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며 “그의 활약상을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해 ‘충절의 고장 괴산’을 더욱 빛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괴산 심영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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