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에서 ‘암살’을 본다
독립기념관에서 ‘암살’을 본다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5.08.11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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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조한필 부국장 <천안·아산>

광복 70돌을 맞아 독립기념관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암살’이 관객 1000만명 돌파를 앞둔 시점이다. 

1987년 개관한 독립기념관은 그동안 독립운동의 실상 전달과 편한 관람을 위해 많은 노력을 펴왔다. 전시방법의 진화를 통해 관람객 눈높이에 다가서려는 성의가 돋보인다.

행사도 연중 열고 있다. 어린이학교, ‘독도야! 놀자’캠프 , 독립군체험캠프, 찾아가는 독립기념관 등 셀 수 없이 많다. 정문 앞엔 종합안내소와 식당·패스트푸드점을 열고 그 한가운데 바닥 분수도 만들어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부들의 여름철 나들이 명소가 됐다.

우리 부부는 독립기념관 뒤편의 단풍나무길을 사랑한다. 산책길로 그만한 데가 없어 월 1회 이상 독립기념관을 찾는다. 이렇게 볼 것 많고, 즐길거리 많아진 독립기념관에 몇 가지 요청할 게 있다. 

지난 토요일 광복 70돌도 기념할 겸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전시실을 관람했다. 전시방법이 업그레이드돼 재미있고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아내가 ‘암살’에 나오는 실존인물 백범 김구(1876~1949) 등 네 명이 찍은 사진을 보며 물었다. “김구 선생 옆에 있는 이 젊은 사람은 누구야?” 예전에 본 사진인데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다. 임시정부 요인임은 분명했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임정 선전부장과 주석비서를 지낸 엄항섭(1898~1962)이었다.

독립기념관엔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찍은 많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관람객은 그들이 누구누구와 생사를 같이했던 동지(同志)였는지 알고 싶다. 암울한 시기, ‘암살’의 3인방 안옥윤·속사포·황덕삼처럼 피로 맺은 동지들을 보고 싶은 것이다.

독립운동가들 밀랍인형 전시실. 아내가 맨 앞에 있는 백범을 발견하더니 또 다른 영화 속 실존인물 약산 김원봉을 찾아 기웃거렸다. 맨 뒤에 있었다. 22살에 민족반역자를 처단하는 의열단을 만들고, 조선의용대 창설의 주역이 됐다. 

해방 후 북으로 넘어가 장관까지 지내는 바람에 우리에겐 생소해진 인물이다. 

윤봉길 의사(1908~32)의 유명한 회중시계(보물 568호). 32년 4월 의거 당일 아침, 윤 의사가 새로 산 시계를 꺼내며 백범에게 말했다. “제건 6원짜리이고,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이니 바꾸시지요.” 그는 백범의 낡은 시계를 차고 홍커우공원으로 향했다.

이 시계가 전시돼 있으나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내가 감격한 듯 시계를 살핀다. “여보! 시곗줄이 녹스는 것 같은데”하며 놀란다. 시큰둥하게 내뱉은 내 대답이 찬물을 끼얹었다. “그거 복제품이야.” 

독립기념관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투쟁사를 증언하는 곳이다. 더 국민에게 다가서려면 진품 전시를 늘리고, 애국선열의 애틋하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더 생생하게 스토리텔링돼야 한다.

일본 육군대장 암살을 시도한 김익상과 오성륜, 도쿄 왕궁 다리에 폭탄 던진 김지섭, 서울 동양척식회사에 폭탄 던지고 일본경찰과 권총 대치했던 나석주 등. 많은 ‘암살’의 실제 주인공들이 이곳에 있는데 특별한 감흥없이 스쳐갈 뿐이다.

44년 5월의 임정 주미외교위원부 협찬회원들 사진. 한가운데에 우리 독립운동사의 ‘거물’ 이승만 전 대통령(1875~1965)이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서 있다. 인물 소개글이 없어 알아 보는 이는 드물다. 독립기념관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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