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잃어버린 사회, 대한민국
가슴을 잃어버린 사회, 대한민국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5.06.1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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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공교롭게도 동시에 전해진 충청도발(發) 슬픈 사연이 많은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죽어가는 부인과 엄마를 눈 앞에 두고서도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한 가족을 대신해 간호사들이 피울음을 토하며 읽어줬다는 ‘임종편지’ 사연과 남편을 간호하다가 부인마저 감염돼 불과 보름사이로 함께 세상을 떠난 노부부의 안타까운 얘기다. 

임종편지가 배달된(?) 대전 을지대병원은 지난 18일 이 소식이 언론에 처음 소개된 후 생각지 않은 홍역을 치렀다. 말 그대로 전국으로부터 걸려오는 취재전화와 그 가족들의 슬픔에 같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전화, 그리고 해당 간호사 등 의료진들에 대한 격려전화가 쇄도했다고 한다. 

이 병원 홍보책임자는 “태어나서 요즘처럼 정신없었던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많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말은 따뜻한 위로와 공감 그리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아파하겠다는 배려의 메시지였다”고 말했다. 

당연히 임종편지는 한참동안이나 검색어 순위 상위를 차지했다. 

아닌게 아니라 메르스 사태 이후 이들 안타까운 소식만큼 국민들을 하나로 묶은 것도 없다. 누가 감염되고, 누가 죽어나가고, 누가 잘못하고, 그리하여 나라에 어떤 근심을 안기는지 등 등 매일 엄청난 보도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번처럼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한꺼번에 후벼판 적은 없다. 무엇 때문일까. 

지난 16일 난데없이 대통령의 동대문상가 방문결과가 뒤늦게 공개됐다. 이틀전 메르스 여파에 따른 유커들의 기피로 심각한 타격을 받는 이곳 상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시장방문에서 대통령이 직접 샀다는 머리띠와 원피스 등 구입물품들과 함께 말이다. 

곧바로 임종편지 소식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이 판국에도 대통령을 아이돌로 만들려고만 하냐”고 비난했고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얼빠진 청와대”라고 일갈했다. 

지난해 세월호 사태의 가장 큰 상처는 단지 어린 학생들의 허망한 떼죽음만이 아니다. 그 엄청난 참사속에서도 죽은 사람과 그 가족들을 또 한 번 죽이는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야만성이었다. 고기밥이니 육포니 하는 상상도 못할 망언과 막말들이 난무했고 잘 나가는 정치인들조차 ‘교통사고’라는 말로 매도했다. 

사람들이 임종편지 소식에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같이 슬퍼하고 같이 아파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인간적인 배려, 인간적인 정, 인간적인 공감, 인간적인 관계에 목말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큰 것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느낄 수 있는 작은 감동을 국민들은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것이다.

졸지에 닥친 메르스로 멀쩡하던 부인을 잃고 끝까지 같이할 것 같은 엄마를 대책없이 떠나 보내야 하는 가족 앞에서 대통령이 구입한 머리띠가 과연 무슨 의미를 띠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나라 자체에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언론의 계속된 지적은 하나도 틀리지 않다. 컨트롤타워가 없는 게 아니라 컨트롤타워를 만들만한 국가적 내공이 있는지조차 궁금하다. 

위정자들이 무슨 일만 터졌다 하면 시장으로 내쳐 달려가 고등어를 들어올리고 어린이를 끌어안는 이벤트는 이젠 없어졌으면 좋겠다. 

마치 석화(石化)된 것 같은 이러한 기계적 연출이 국민들에게 어필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분명 착각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건 이러한 겉모습이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자꾸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너무 냉소가 넘쳐난다. 말 한마디에 꼬투리를 잡혀 패가망신하는 살벌한 사회가 되고 있다. 남의 슬픔은 그저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오로지 나밖에 없다. 

간호사들이 편지를 읽으며 오열로써 흘렸다는 눈물, 이 소식에 한참이나 망연자실한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 그러면서도 끝내 표현은 못했지만 수많은 댓글에 공감을 달아 준 그들이 하나같이 원하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이젠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의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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