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고 하지만…
아무리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고 하지만…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5.06.04 18: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말에… 一筆

무슨 질병이나 전염병 중에서도 가장 요주의 대상은 당연히 이번 메르스 같은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는 것들이다. 사람을 만나 한번 숨쉬는 것만으로도 병을 옮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요즘처럼 외국을 이웃집 드나들 듯하는 글로벌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문명이 한 참 뒤떨어진 과거에도 이러한 질병은 대처하는데 한계가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시쳇말로 까딱 방심하다간 곧바로 재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세계사에 ‘스페인 독감’이라고 명명된 감기 바이러스다. 세계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 3월을 기점으로 약 2년여 동안 지구촌을 휩쓸었던 스페인 독감은 미국 시카고가 발원지였지만 참전 군인들을 따라 유럽으로 전파된 후 이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군인을 포함한 무려 5000만명(1억이라는 설도 있음)의 사망자를 내 1차 세계대전의 전체 사망자보다 3배나 더 많았다고 한다. 1차세계대전의 역사는 독감을 위주로 다시 써져야 한다는 주장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스페인 독감의 저주를 피해가지 못했다. “한 마을(村)이 모두 병에 걸린 사람들 때문에 죽는 사람을 어떻게 처리할 사람이 없는 참혹한 광경...”이라는 당시 매일신보 보도(1918년 11월 22일)에서도 알 수 있듯 온 나라에 시체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조선총독부 연감은 전국에서 758만 8400명의 환자가 발생해 이중 14만 518명이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선 고작 감기에 불과한 질병이 이같은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온 배경은 다른 게 아니다. 호흡기로 전염됨으로써 전파성이 빠를 수 밖에 없는데도 세계대전의 와중에 각종 열악한 위생환경과 맞물려 불과 짧은 시간 대책없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이번 메르스 즉 중동호흡기중후군에 대한 국가 대처를 놓고 “국가 컨트롤 타워가 없다”고 언론들이 난리다.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초기대응이 잘못 됐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대책본부를 늦게 꾸리고 그 책임자를 국장급에서 장관으로까지 계속 상향조정(?)하면서 시간을 지체한 것만을 탓하는 게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이 질병에 대한 심각성, 아니 그 실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버리 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동물원의 애먼 낙타들만 감금하고,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던 장관은 느닷없이 두터운 마스크를 한 채 나타났다. 한편의 코메디나 다름없다. 게다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생전 청진기 한번 잡아보지 않은 경제통으로, 그가 방송에 나와 반쯤은 넋나간 표정으로 사태를 설명할 때는 안쓰러움마저 느껴졌다. “감염경로가 의료기관 내에 국한되어 있어 큰 문제는 없다”는 정부의 초기 발표는 마치 “승객 전원 구조”라는 세월호 참사 첫날의 데자뷔를 느끼는 것 같았다.

실망스러운 것은 또 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데도 청와대와 정치권이 국회법을 놓고 서로 끗발 싸움을 벌이는데만 혈안이 됐다는 점이다. 설혹 그것이 과장이 됐든 국민들은 갑작스럽게 닥친 ‘염병’에 자기생명을 지키겠다고 난리인데도 이 나라 위정자들은 하찮은 자기 ‘고뿔’만도 못한 것 쯤으로 치부한 것이다. 

논란이 된 국회법 개정안의 내용은 이렇다. “소관 상임위는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 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수정 변경 요구를 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상임위에 보고해야 한다.”

문맥으로만 보면 수정 변경의 강제이행을 분명하게 명시하는 내용이 없어 어차피 이 법안은 앞으로도 공박을 빚을 게 뻔하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청와대와 국회, 청와대와 여당, 여당과 야당이 서로 발톱만 세우지 말고 차라리 헌법소원을 물어 판단하는 게 더 현명할 수 있다. 국가의 모든 권력기관과 정보기관을 휘하에 두는 대통령제의 브레이크 없는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선 이 정도라도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견제를 보장해 줌으로써 제도적 공론화를 유도할 필요성은 얼마든지 있다. 

진정으로 3권 분립이 걱정된다면 입법권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을 청와대 특보로 임명해 행정부의 꼬봉으로 만든 것부터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