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66>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66>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07 10: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향비(香妃)가 잠들어 있는 카스

건륭황제도 香妃의 정절 꺾지 못해…

▲ 카스 북동쪽 5km 지점에 위치한 능묘이며 1640년 이 지방의 권력자인 아파 호자(和卓)가 그의 아버지이자 위그루족의 정신적 지주 '아팍호자'를 위해 만든묘로 그는 이슬람의 시조 무하마드의 직계자손이며, 17세기에 이곳에 와서 이슬람교를 전파했다. 이슬람 교도들의 바람에 의해 향비묘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훠자 가족들의 무덤이다. 포도넝쿨과 진흙 벽돌로 쌓은 농가 사이로 얕은 하천과 도랑물이 흐르고 있다. 녹음 속에 묻힌 넓은 오아시스 도시 카스가 신기루처럼 눈앞에 다가왔다. 이 도시의 옛 지명은 카슈가르로 지금은 한자식 표현으로 카스로 사용하고 있다. 오후 1시 20분 중국의 마지막 철도역 카스에 도착했다. 모레 떠날 기차표를 예매하려 했지만, 내일 아침 8시 30분부터 예매가 시작된다고 한다. 택시 시간이 베이징의 표준시간보다 2시간 늦게 맞추어져 있다. 이곳은 시차가 베이징보다 2시간 늦기 때문에 이곳 시간에 다시 맞추어 계획해야 한다. 택시로 카스 색만병관(色滿兵館)에 여장을 풀었다(15元). 이곳의 다인방은 세계 각국의 배낭여행객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호텔 맞은편 John's 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자전거를 빌려 향비묘로 향했다. 10여분쯤 달리면 서역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 애티가르 청전스(淸眞寺)에 도착한다. 17세기에 창건된 건물로 이슬람 대학으로 쓰던 건물이다. 사원의 돔이나 기하학적 무늬, 터번을 쓰고, 8000명이 동시에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보면 이곳이 중국 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는 길에 인민광장의 거대한 모택동 동상을 한 바퀴 돌았다. 화려하게 꽃으로 장식된 광장주변 벤치엔 많은 위그르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곳은 인종적으로도 중국과는 매우 다르고 복장도 위그르 식이 대다수여서 중국도시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언덕과 먼지 나는 시골길을 한 시간 정도 달려 시가지 동쪽 4km에 있는 향비묘(香妃墓) 입구에 도착했다. 카스는 시내버스가 다니지 않을 정도로 작은 도시다. 이 전에는 당나귀가 이끄는 마차가 시내를 많이 돌아다녔는데, 지금은 택시가 많이 늘어났고, 시내를 오가는 작은 트럭을 볼 수 있다. 소달구지에 일가족이 타고 가는 위구르 가족들의 뒷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60년대 우리의 시장 터 같은 언덕길을 지나 시멘트 포장길을 달려왔다. 카스인들의 생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코스다. 우루무치에서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넘어가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가 중국의 마지막 철도역이라는 카스의 상징성뿐만 아니라 향비라는 한 여인에 대한 일종의 향수 같은 것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향비묘 입구의 작은 연못가엔 포플러나무가 에워싸고, 우측으로 난 향비의 묘문을 들어서니 철책으로 둘러친 정원엔 장미꽃이 활짝 피어있다. 이름 모를 잡초와 나무들이 가꾸어진 묘당 안에는 호자 일족 5대 72인이 이곳에 묻혀 있다. 큰 관에서 작은 관까지 다양한 색깔의 천으로 감싼 관들이 묘당 홀 안에 놓여져 있다. 홀 한가운데 크게 자리 잡고 있는 호자의 무덤 옆 오른쪽 구석에 향비의 관이 안치되어 있다. 이 건물 안에는 향비의 유체가 이송되어 올 당시에 쓰였다는 수레가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 도착하기 이전에는 땅에 매장된 향비의 무덤을 상상했는데, 이슬람식 무덤은 우리와는 달리 매장보다는 아름다운 관을 천으로 싸서 능묘의 홀 안에 안치하는 것이다. 실크로드의 답사 중 향비의 능묘에 들려 향과 한 잔의 술을 올리고 싶었던 내 기대와 상상력은 빗나가고 말았다. 이곳에서는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어 짬짬이 관리인을 눈을 피해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다. 정원에 핀 붉은 장미꽃을 바라보며 이국땅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한 여인의 넋을 생각하며 두 손을 합장하였다. 마당 한편에 일어선 해바라기 꽃과 포도넝쿨, 담 벽에 늘어선 하늘을 찌를 듯한 포플러 나무숲들이 뜨거운 태양열 아래 숨을 죽이고 고요를 호흡하고 있다. 둥근 돔식 지붕에 허공을 찌를 듯 뾰족한 첨탑은 전형적인 이슬람식 고대 능묘 건축물이다. 이슬람교도들은 향비묘라고 부르기를 좋아하지만, 실제는 호자 가족들의 공동 묘역이다. 1640년 아파 호자가 만든 공동 묘역 이 건물은 1640년 이 지방의 권력자인 아파 호자(和卓)가 그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슬람식 묘역과 땅에다 매장하는 유교식 매장풍습은 묘지문화에 대한 동서양의 시각차를 잘 나타내 주는 것 같다. 들꽃과 장미가 어울려 있는 정원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고 있다. 위구르의 신부를 맞으려고 청나라 건륭황제(乾隆皇帝)도 몇 년씩을 기다려야 했다는 향비가 아니던가. 향비의 애절한 이야기를 떠올리면 수백 년의 시공을 넘어 내 가슴속에 스며드는 그녀의 향기는 향비의 몸에서 났다는 아름다운 향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아름답고 슬픈 사연 때문일 것이다. 향비(香妃)라 불렸던 위구르의 이 여인은 지금부터 약 350년 전인 1650년대 초 청(淸)나라가 건국되고 건륭제가 서역을 평정하고 있을 때 카스의 영향력 있는 아바크 호자의 딸로 태어났다. 향비는 어찌나 총명하고 미모가 빼어났던지 주변국가에 칭송과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소문이 소문을 낳고 발없는 말이 천리를 퍼져 서역 원정길에 올랐던 건륭황제의 귀에 들어갔다. 향비를 한 번 만나보고 싶어하는 황제의 명에 따라 그녀를 중국으로 데려가고자 하였다. 황제의 청 거절 후 자결로 비극적 삶 마감 나머지 가족들은 군사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고, 그녀만 홀로 가마에 태워져 베이징으로 호송되었다. 황궁까지 오는데 3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향비를 본 건륭제는 첫눈에 반하여 궁에 계속 머물러 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황제의 수청을 거부한 채 한사코 카스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천하를 호령하던 건륭황제의 청을 몇 번씩이나 거부한 향비는 황제의 노여움을 사 결국 자결로써 비극적인 삶을 마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향비묘의 정원

위구르인들은 그녀의 시체를 성대한 상여에 실어 3년이 걸려 카스로 운반하였다고 한다. 정복자의 손에 끌려갔을 망정 천하를 호령하던 황제의 명령을 거부한 채 정절을 굽히지 않고 고향을 그리며 쓸쓸하게 죽어갔던 그녀의 애틋한 마음이 오늘도 위구르인들의 가슴에 남아 그녀의 이야기가 세세손손 전해지고 있다. 그들에게 향비는 천하를 호령하던 정복자인 황제에게 죽음으로 정절을 굽히지 않는 불굴의 저항 정신의 상징이요, 영원히 살아있는 민족적 자긍심일 것이다. 그녀의 시신은 아바크 호자 가문의 묘지에 묻혔고, 이곳 사람들은 향비의 묘라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향비의 미모와 매력은 이탈리아 출신 화가 카스틸리오네의 초상화를 통해 후세에 전해졌다. 중국 역사상 손꼽는 군주로 평가받는 건륭황제도 연약한 한 위구르 여인의 마음을 얻지 못하였다. 생사여탈의 권세를 가진 황제라도 한 여인의 굳은 절개를 꺾을 수 없다는 교훈을 후세에 전해주고 있다. 그녀의 몸에서 났다는 향기보다는 그녀의 가슴에서 우러난 향기는 천년의 시공을 넘어 그녀의 민족과 자손들에게 자부심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향비의 묘가 없었더라면 카스를 거치지 않고 우루무치에서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국경을 넘었을 것이다. 중국 변방 끝인 카스에서 향비의 체향을 맡지 않고는 도저히 중앙아시아로 넘어 갈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는 폭정에 굴하지 않고 정절을 지키는 춘향이가 있다면 위구르족 처녀들에게는 향비가 있어 그들의 정신적 지주로 회자되고 있다.

향비의 묘 옆으로 늘어선 포플러나무 좌측에는 열대나무 아래 백일홍 같은 꽃들이 화원에 활짝 피어 있다. 화원 옆으로 목조와 벽돌로 쌓은 교경당(敎經堂)이 굳게 철책을 잠그고 빛 바랜 기둥과 홀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교경당 좌측으로 홀 앞 기둥과 바닥에 푸른 양탄자를 깔아 놓고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아담한 사원인 청진사가 있다.

향비묘를 나와 연못가 휴게소 벤치에 앉았다. 담너머 뾰족한 첨탑 기둥을 보면서 그녀를 향해 내 마음속 닫혀 진 정원에서 빨간 장미 한 송이를 꺼내 그녀에게 바쳤다. 가슴에 묻혀있던 향수 같은 그리움이 한 떨기 구름처럼 푸른 하늘가를 맴돈다. 세월의 강 밖을 흐르는 그리움 같은 것을 누구나 하나쯤 안고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삭막한 사막 도시 카스에서 아름답고 고결하게 죽어간 이국의 한 여인을 생각하며 폐부 깊숙이 그녀의 체취를 호흡해 본다.

향비여! 타클라마칸 사막 한가운데 핀 장미꽃 같은 여인이여! 그대의 미모와 그대의 총명한 지혜는 신들이 시기하고 질투할 만큼 향기롭고 눈부시기에 인간이 취할 수 없는 지고지순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황제를 통하여 인간에게 전달하려 왔던 여인이여 동쪽 끝 이방의 한 나그네가 긴 여정에 들러 그대가 남긴 천년 향기를 가슴으로 호흡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