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검사, 20년만의 귀가(歸家)
홍준표 검사, 20년만의 귀가(歸家)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5.05.0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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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예정대로라면 홍준표 경남지사는 오늘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다. 1994년 9월 28일 ‘일산상의 이유로 사직을 원합니다’라는 단 한 줄의 사직서를 쓰고 검찰을 떠난 지 만 20년만의 친정행이다. 검찰을 나온 후에도 한참동안 ‘체질적 수사검사’를 자처하며 간절하게 복귀를 원했던 그였지만 이번엔 피의자 신분이다. 

홍준표에 대한 수사는 그가 성완종의 돈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의 혐의다툼 보다도 또 다른 이유로 국민들을 더 긴장시킨다. 좁게는 검찰이라는 조직안에서 서로 선후배 내지 동지적 관계로 얽혔던 검찰 인맥들의 향후 거취가 그렇고, 넓게는 이미 무수한 언론들이 창과 방패의 싸움이라고 부추겼듯 이 나라 최고 권력들의 사이에서 빚어질, 아직은 예측불허의 ‘빅 뱅’이 그렇다는 것이다. 홍준표는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가 조여오자 성완종의 돈과 당시 대선 및 총선 사이의 연관성을 시사하는 등 과거 수사검사 시절의 결기를 숨기지 않았다. 해석하기에 따라선 협박으로도 들렸다. 

일부러 꿰맞춘다고 해도 불가능할 정도로 이번 홍준표 수사의 인적 고리는 참으로 냉혹하기까지 하다. 이미 알려진대로 홍준표와 김진태 검찰총장은 사법연수원의 동기다. 이번 일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둘은 평생을 같이 할 동지적 관계였을 것이다. 피의자 홍준표와 수사의 총지휘를 책임질 문무일 검사장은 고대 선후배 관계로 둘은 과거와 현재를 대표하는 검찰의 상징적인 특수통이다. 

홍준표 변호인단을 대표하는 이우승과 이혁 변호사 역시 고대 동문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 때는 특검팀에서 문무일 검사장과 한솥밥을 먹었다. 수사책임자와 피의자 그리고 변호인까지 모두 대학과 검찰의 선후배이면서 하나같이 강력 내지 특수통으로 검찰사회에선 이정표를 새긴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기구한 운명도 없다. 

홍준표만큼 자신이 속한 검찰조직과 맞섰던 인물도 없다. 굵직한 사건을 수사하면서 조직의 상층부와 사사건건 부딪쳤고 결국 이 때문에 그는 불과 10년만에 천직인 검사직을 내놓게 된다. 슬롯머신 사건에선 검찰의 까마득한 대선배인 박철언과 이건개를 구속시킨 전력으로 배신의 상징인 ‘유다’라는 별명까지 얻어야 했지만 어쨌든 그는 권력과 돈에 굴하지 않는 한국의 피에트로, 모래시계 검사였다.

그가 모래시계 검사의 내성을 키우기 시작한 곳은 공교롭게도 청주다. 1985년 1월 검사로서의 첫 부임지가 청주지검이었고 이후 2년이 지날 즈음 맞게 된 증평 물먹인 소 도축 사건의 배후가 그야말로 초임검사로선 머리카락이 거꾸로 설 수밖에 없는 ‘국가 권력’이었다. 문제가 된 도축장의 뒤를 봐주는 사람이 당시 법무장관 처가 쪽 회사의 회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홍준표는 온갖 외압을 물리치고 그를 구속시키는데 성공했고 이후 슬롯머신 수사로 6공 황태자 박철언에게 수갑을 내릴 때까지 숱한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한 시대의 검찰상을 각인시켰다. 

그는 박철언에 대해 희랍신화의 이카로스에 빗대어 처참하게 추락하는 최후를 보았다고 회고록에 남기기도 했다. 홍준표가 말하고자 한 것은 권력에 취해 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위만 바라보며 위세를 떨었다간 똑같은 꼴을 당할 수 있다는 경고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 홍준표가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권력의 정점에서 느닷없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본인이 검사시절 하늘같은 선배를 응징했듯, 이젠 새까만 후배 앞에서 진실을 다퉈야 하는 험한 시련을 당해야 하는 것이다. 

청주지검 평검사로 각종 사건에 격렬하게 맞서면서도 틈만 나면 진천 초평저수지를 찾았다는 그는 낚싯대를 바라보며 권력과 삶의 무상함을 일찌감치 되뇌었다고 한다. 검사생활을 정리한 자서전엔 이런 말도 남겼다. “검사의 눈으로만 보던 세상을 때로는 피고인의 눈으로, 성직자의 눈으로, 정치가의 눈으로, 서민의 눈으로 보도록 노력해야 겠다.” 만약 홍준표가 이렇게만 살았다면 그는 다시 모래시계를 거꾸로 곧추세우며 보란듯이 되살아날 것이다. 

그런데도 끝내 눈에 아른거리는 건 애들 무상급식을 절단낸 후 미국으로 건너가 골프를 치고, 비지니스 항공석에 탔다가 들켜버린 홍준표의 갑작스런 옹색함이다.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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