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만난 캐디
네팔에서 만난 캐디
  • 김기호 <골프칼럼니스트>
  • 승인 2015.04.0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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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호의 똑소리 나는 골프이야기

김기호 <골프칼럼니스트>

여러 나라에서 라운드하며 다양한 캐디를 만났다. 

라오스에서 만난 어린 캐디는 팁 자체를 몰라 돈을 줘도 받지 않았고 인도의 골프장에선 백 속에 코브라가 들어있던 적도 있다.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는 9홀의 퍼블릭 코스가 있는데 근처에 화장터가 있어 시체 타는 연기를 보면서 티샷을 하는 곳이다. 10세부터 캐디를 했다는 젊은 친구는 인생엔 저마다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가 있는 거라고 했다.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던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말이 생각났다.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가 보이는 포카라에도 골프장이 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해발 8000m 이상의 히말라야를 향해 드라이버를 날리는 곳이다. 여기선 형편없는 샷과 3퍼팅을 밥 먹듯이 해도 억울하지 않다. 폭이 좁은 강의 양옆에 18홀을 만들어 놓았는데 라운드하는 내내 8091m의 안나푸르나와 위성봉들, 히말라야의 성산이라는 마차푸차레를 볼 수 있다. 

골프장의 매니저이자 헤드프로, 마리란 이름을 가진 일본 여자와 함께 섬을 만들었다. 캐디는 7명이 따라왔는데 놀라운 것은 골프장의 모든 그린에 어른 키 높이로 30㎝ 간격의 철조망이 쳐져 있다는 것이다. 어프로치를 하면 철조망에 맞고 떨어지는 상황이 속출했다. 마리가 친 샷은 탑 핑으로 낮게 날아갔는데 철조망에 맞고 떨어져 버디를 하기도 했다. 

“그린 주변에 철조망을 촘촘하게 쳐 놓으면 어프로치를 어떻게 하란 말인가?”

네팔에서 소는 살아있는 신이다. 신(神)들이 그린의 풀을 먹거나 밟아 망가지게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들판의 신들은 한가롭게 풀을 뜯었지만 목도리와 모자를 쓴 캐디들은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워터 해저드가 나오면 7명의 캐디는 약속을 한 듯 빙하가 녹은 차가운 물속에 들어갔다. 단지 물에 빠지는 공을 주워 공값을 아끼기 위해서다. 어떤 홀은 티잉 그라운드에서 맨발의 캐디가 있는 지점이 40m 정도밖에 안 된다.

캐디들은 워터해저드가 나오면 무표정한 모습으로 얼음 같은 물속에 기계처럼 들어갔다. 

마리의 샷이 캐디의 얼굴 쪽으로 강하게 날아가자 비명을 질렀고 다음 샷을 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아직도 빗물처럼 떨어지던 그녀의 눈물과 매니저를 향한 경멸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영어를 전혀 모르는 캐디들과 어떤 의사소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동그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거나 아쉬운 듯이 그린에 쳐진 철조망을 바라보거나 히말라야를 바라봤다. 

이백을 빌리지 않아도 히말라야는 너무도 많았다. 

내 마음에 하나, 캐디의 마음속에 하나, 우리의 마음속에 또 하나, 캐디들이 들어가 기다렸던 수많은 해저드에 하나씩,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에도 있었다. 처음으로 히말라야도 슬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엔 눈과 바위, 얼음뿐이 아니라 슬픔과 절망도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었다. 오쇼 라즈니쉬는 카주라호라고 우겼지만 눈 덮인 히말라야를 봤다면 당신은 세상에서 봐야 할 것은 모두 본 것이다. 

산스크리트어로 히마는 눈이란 뜻이고 라야는 머문다는 의미다. 태어나 단 한 번이라도 히말라야를 본 사람은 이전의 자기 모습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길에 이런 안내문이 있다. “당신이 히말라야에 있을 때 사진 이외는 가지려 하지 말고 발자국 이외는 남기지 말고 시간이외엔 죽이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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