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한 접시
그리움 한 접시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5.04.0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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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모든 사람에게는 그만의 추억이 있다.

햇빛과 생명 그리고 색채가 화려한 봄의 향연은 산모퉁이를 돌아 들녘에 자리 잡는다.

봄볕이 온몸에 내려앉고 입 안이 쓰고 텁텁하면서 입맛을 잃고 뭔가 허전할 때면 달달한 주전부리가 생각이 나는 날이다. 그럴 때면 냉동실의 곶감을 먹곤 했다. 이제 작은 통에 몇 개 남지 않은 곶감, 먹고픈 유혹을 뿌리치고 입맛만 다시며 추억을 모두 먹어 치울까 봐 다시 뚜껑을 닫고 그리움을 쫓아갔다. 

저수지를 지나 마을 끝자락 외딴집, 어르신의 안부가 궁금하여 사회복지사 일을 하면서 늘 찾는 집이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늦은 가을이면 해마다 비닐하우스 곶감 걸이엔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독거생활로 겨울양식이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불타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익어 가면 곳간에는 여러 가지 겨울양식이 하나, 둘 자리를 잡는다.

떫은맛이 있는 감을 익기 전에 따서 껍질을 벗기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매달아 말려서 만든 곶감, 요즘에는 계절과 상관없이 손쉽게 구할 수 있음에도 왜 이리 힘들게 말리고 계시는지. 

곶감을 보고 있노라면 쭈글쭈글한 곶감의 껍질은 어머니의 손을 닮았고, 달달한 속내는 어머니의 온기며 향기로 다가온다. 그리고 하얗게 분칠된 곶감은 어머니를 그리는 응어리진 마음인 것 같아 아련함이 전한다. 

인적이 드문 어르신댁에 방문이라도 하면 어르신은 곳간으로 먼저 들어 가시어 양푼에 붉은 덩어리 몇 개를 꺼내 나오신다. 손에 묻은 지푸라기는 대충 몸뻬바지에 쓱쓱 문지르고 시골스럽게 대접에 홍시를 담아 숟가락으로 으깨면서 퍼먹을 수 있게 하신다. 예전엔 주전부리가 생각나는 겨울밤이면 이불 속에서 홍시를 퍼먹던 그때처럼 말이다. 

예전의 이불 속에서 듣던 옛날이야기, 밤새우는 아이를 달래느라고 부모가 애를 먹고 있었다. 자꾸 울면 호랑이가 잡아먹는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던 아기가 곶감을 준다고 하니까 신통하게도 울음을 뚝 그치는 것이었다. 호랑이는 그 말을 듣고 ‘곶감이란 놈이 나보다 더 무서운 놈이구나.’하고 생각을 하였다는 전래동화, 오늘 잊혀가는 그리움을 어르신 덕에 슬며시 또 그렸다. 

뒤뜰 감나무의 속이 점점 비워지면 어르신의 나이 숫자는 하나씩 더해간다. 감나무는 오래되면 될수록 속이 시커멓게 변하면서 속이 텅텅 빈다. 마치 자식 걱정에 골이 다 빠져 푸석푸석해진 우리네 부모의 속과 닮은 것처럼. 

이렇게 흐르는 세월 속에 감나무 속이 비워지듯 우리의 전통과 아름다운 미풍양속 또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발전해가면서 조금씩 잊혀 가고 있다. 어르신이 계시지 않으며 누가 저 많은 감을 저장할 것인가?

처마 밑에서 감을 돌려 깎는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가 아니던가. 옛것이 사라지는 것처럼 정서 깊은 아름다운 풍경도 세월 속에 묻어지는 시대.

곶감은 그리움이다. 최첨단 디지털시대, 인정이 없고 모질어지는 이 각박한 세상 속, 어르신은 삶의 지혜를 담아 오가는 이들에게 잊혀져가는 추억 그리고 고향의 향기와 정을 품게 하신 것이다. 

이처럼 따스함이 전해지는 그리움 한 접시, 고령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한편에서는 걱정스러운 한숨소리가 들리지만 그래도 어르신들이 계시기에 살만한 세상이 아닐는지.

삶의 언저리, 그리움 한 접시에 추억 하나쯤은 남겨 둬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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