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 전영순 <문학평론가·수필가>
  • 승인 2015.04.0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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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스크래치
전영순 <문학평론가·수필가>

꽃 대궐이다.

요즘 우리 주위는 온통 방긋거리는 꽃뿐이다. 꽃들이 제구실을 충실히 하느라 한창이다. 누가 나에게 이렇게 환한 선물을 줬단 말인가.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신이 나에게 준 선물을 내 어찌 반기지 않으리오. 어디서 이렇게 고운 님이 오셨단 말인가. 위대하고 위대하도다.

자연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시련에 빠질까 봐 말없이 찾아와 안부를 물으며 희망을 준다. 어느 누가 감히 곳곳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저 찬란한 꽃불들을 함부로 대할 수가 있을까. 무심천 벚나무도 청주시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삶의 활력소가 되라고 불을 밝히고 있다. 요즘 무심천은 꽃불 켜놓고 호객행위로 시민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느라 정신이 없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벚꽃에 뒤질세라 활짝 핀 미소로 사진 찍느라 북새통이다. 벚꽃 그늘에 서서 찡그린 사람을 내 아직 본 적이 없다.

꽃들은 우리의 희망이요, 기쁨이다. 생동감 넘치는 계절에 움츠리거나 괴로워하는 것은 되레 자연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잎새달, 자연도 사람도 모두 내게 기쁜 소식으로 다가온 선물이자 축복이다. 아침부터 뜻하지 않은 미디어 힘으로 축하의 꽃다발과 메시지가 빵빵 터진다.

중년이 되고부터는 본인 생일도 잊은 채 그저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내게 SNS는 나의 유일한 홍보대사다. ‘ㅇㅇ님, 오늘 생일이니 축하해 주세요’하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으니 이 소식을 공유하는 분들은 댓글과 전화로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아무튼 기분이 좋았다. 소식을 보내온 사람들이 반갑고 고맙다.

요즘은 말 한마디 댓글 하나도 품앗이 격이다. 현대인들에게 SNS는 생활 속 거대한 문화로 자리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성을 상실하는 지름길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우리는 그들을 배제할 수는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함께 공유해야 할 때 외면하면 어쩐지 시대에 뒤처지는 느낌이 든다. 하여간 시대에 동참한다는 것도 공동체 사회에 공유하며 살아간다는 의미가 되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가만히 있어도 내가 행복한 것은 부족함이 많기 때문이다. 주위에 보이는 것마다 친구 같고 스승 같아 고맙고 감사하다.

생명이 싹트는 달에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늘 새로움을 선사하는 친구인 자연에도 감사하다. 일일시호일이라 부족한 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늘 새롭게 다가와 매일매일 즐겁다. ‘저 사람은 뭐가 저리 좋아 히죽거리며 살아간담’하고 핀잔을 줘도 좋다.

오늘은 아침에 베란다에 핀 난초꽃을 보고 눈물이 났다. 미안하고 고마워서였다.

나는 베란다를 볼 일이 있을 때 외에는 안 나간다. 하루에 몇 번 나갈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한 달 가까이 안 나갈 때도 있다. 어쩌다 베란다에 나가보면 화초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가 하면 아예 바싹 말라 있는 것도 있다.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오래간 것이 화분 일곱개에 담긴 난초다. 오늘도 뭐를 찾기 위해 베란다에 갔다가 은은한 향에 끌려 가보니 난초꽃이었다. 어찌나 미안하고 고맙던지 그만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반건달처럼 살아가는 나는 누가 화초를 줘도 부담스럽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관계를 잘 맺어가려면 사랑과 정성으로 다독거려야 하는데 나는 그럴만한 에너지나 시간이 없다. 그저 내 할 일 하기도 벅차다.

꽃들이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머리를 식혀 가슴으로 살아가라고 잠시 숨통을 열어놓았다. 화무십일홍이라지만 소소한 인간사에 얽매이지 말고 잠시 시선을 돌려보라고 방긋 웃고 있다.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팍팍 생길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기분 좋은 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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